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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없는 제도와 리더십은 영성없는 블랙홀

  • 황규학
  • 입력 2010.11.14 08:42
  • 댓글 1
  • 글자크기설정

  • 종교의 제도화와 리더의 독선은 정치의 시녀로 전락
일반적으로 역사학자들은 기독교 타락의 시작을 로마에서 기독교가 313년에 공인될 때부터 였다고 주장한다. 기독교가 합법적으로 인정받고 국가의 종교가 됨으로 인해 종교와 정치의 밀착으로, 기독교안에 정치가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황제가 교황에게 무릎을 꿇은 카놋사 굴욕은 대표적인 사건이다. 종교 지도자가 세속군주의 권위보다 높게 평가된 것이다. 이것이 중세 사회이다. 중세는 전적으로 종교의 정치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종교가 정치화 되었을 때, 대부분 종교는 몰락을 자초하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가 그 어느 때와 달리 부패와 타락의 길로 빠지는 것은 기독교가 정치화되었거나 제도주의에 빠졌기 때문이다. 개개인은 신앙생활을 잘 하고 누구보다도 복음주의자인 기독교인이지만 제도나 단체의 힘으로 나아갈 때, 비도덕적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인홀드 니버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썼던 것이다. 광성교회 사태만 보더라도 개개인적으로는 신앙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그들이 이탈측, 잔류측 상관없이 광성교회라는 단체의 이름으로 나아갔을 때는 비도덕적 인간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제도화되자마자 제도악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없는 제도는 영성까지 흡수하는 블랙홀 이다.  
 
제도라는 것은 질서있게 개개인의 결집된 역량을 표현하고자 구성된 일종의 단체의 의사표시이다.  그래서 사회의 모든 시스템을 보면 모두 제도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일찌기 서구에서 발달한 것으로 개개인보다 개인의 의지가 합쳐져 단체의 역량을 과시하게 되었다. 특히 제도는 항시 법이 밑받침이 되어왔다. 법에 의해서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교회도 발전하면 할수록 제도가 발전하게 된다. 개척교회와 소형교회는 제도보다는 인맥으로 이루어지지만 중대형교회일수록 인맥보다는 제도에 의해서 굴러간다.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도 제도에 의해서 이루어져가고 있다.
 
종교의 제도화는 종교의 정치화
 
그러나 종교집단이 제도화될 때 대체로 종교의 순수기능과 가치를 상실해 버리는 것이다. 교회조직의 일부분인 당회나 노회, 총회는 교회조직을 원할하게 하여 교회가 사회에 대해서 빛의 역할을 하기 위함에 있다.
 
그렇지만 개교회의 분규를 보면 당회, 노회, 총회라는 정치조직단체의 힘으로 교회의 기능이 마비되거나 온갖 악이 저질러 진다. 교회기능의 순수성이 사라지고 일부 정치집단들에 의하여 당회, 노회, 총회가 이용되고 마는 것이다. 당회, 노회, 총회는 치리회로서 개교회와 신도들의 신앙생활을 우선시 해야하는데 당회는 신도가 아니라 장로와 목사의 대의기관으로 전락했고, 노회는 목사들의 노조로 전락했고, 총회는 윤번제로 돌아가면서 하는 총회임원들의 정치적집단으로 전락했다. 총회는 개교회의 아픔과 문제는 관심도 없다.
 
정치적 대의기관, 당회, 노회, 총회
 
당회는 하나님의 의사와 신도들의 의사를 대의하는 기관이고, 노회는 총대들이 개교회의 의사를 대의해는 기관이고, 총회는 각 노회의 의사를 대의하는 기관인데, 당회는 목사와 장로들의 의견만 대의하는 기관으로 전락했고, 노회는 목사들의 의사만 대의하는 기관으로  전락했고, 총회는  각 노회와 상관없이 총회 임원들의 의견만 대의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이는 영성은 사라지고 현실적인 정치성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성이 없는 곳은 그리스도의 정신과 신앙의 본질은 사라지고, 현실적인 이권과 정치적 셈, 하늘을 치솟는 명예, 기관을 통한 죄악의 정당화 등 만이 남는다. 총회는 에큐메니칼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서 총회에서 한번 결정한 사안은 지방의 개교회까지 미치셔 복음전파를 앞서야 하는데,  총회장 1년을 하는데 수십억원을 사용하고 당선되어야 하는 정치적인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노회는 어려운 개교회를 돌보아 개교회가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데 노회임원들의 명예를 실현하는 정치적인 단체로 전락해버렸다. 당회는 장로들이 신도들을 하나하나돌보는 일에 관심을 두고 행정일을 보아야 하는데 목사의 꼭두각시이거나 거수기, 심지어는 목사의 정책에 무조건적인 반대만 하는 야당으로 전락을 했다. 그래서 목사측, 장로측 힘겨루기를 하고있는 상태이다.   
 
제도는 모든 것을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모두 제도주의에 희생당하고 만 것이다. 제도주의는 불랙홀과 같아서 누구든지 그 옆으로 가면 빠져들기 쉽상이다. 심지어는 하나님까지 빨아들여 죽음으로 몰고가는 강력한 초신성 이상 이다. 인간의 제도라는 것은 필요하지만, 때에 따라서 제도를 잘못 사용할 경우, 인간의 순수성, 영성, 그리스도 정신 등 모든 것을 흡수하여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만들어 버리는 성향이 있다. 바리새인들도 원래는 훌륭한 신앙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제도화되면서 그들의 영성과 정신은 제도라는 블랙홀에 빨려 형식만 남게 되었다.
 
결국 제도주의는 질서를 확립하고 보다 체계적인 복음전파와 영성을 하는 일에 앞장서기 보다는 인간의 현실적인 이익과 명예, 힘 등을 실현시키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제도주의가 곧 우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영성없는 제도주의는 우상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제도라는 것은 현실적인 파워가 있기 때문에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있어서 누구나에게 유혹대상이다. 제도를 통한 권위는 약자를 빨아들이고, 좁은 길을 빨아들이고, 어렵고 힘든 길을 빨아들이고, 심지어 그리스도 정신까지도 흡수하고 나아가 하나님까지 빨아들이고 마는 것이다. 영성과 신앙은 없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본디오빌라도가 제도주의의 희생자이다. 교계도 일반법정의 힘이 교단법정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이 역시 제도주의에 함몰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사태를 보면 영성이 사라진 교회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부동산만 남는다. 제도주의에 함몰된 사람들이다. 고신교단 한 목사는 이혼녀와 몰래 결혼을 하고 미리 잠자리를 하면서 항의하는 신도들에게 자신이 담임목사라고 신도들을 제명한다.  고신, 통합, 합동 가릴 것 없다.  
 
노회는 목사의 노조로 전락했다. 전주노회만 하더라도 노회가 욕목사를 지원한다. 당회, 노회, 총회 가 모두 영성은 사라지고 제도만 남기 때문이다. 죄악과 부도덕을 세탁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제일 좋다. 사회에서는 검찰청, 사법부만 로비만 하면 악을 세탁하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곳이다.  이처럼 사회이고 교회이고 제도는 좋은 점도 있지만 다들 한편으로 악을 정당성있게 세탁하는 장소 이다. 제도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죄악을 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악의 세탁장소가 산헤드린 법정이다.
 
제도는 형식적 선과 내면의 악이 어우러진 것
 
불행하게도 이러한 악의 세탁장소인 제도가 우리 교계도 판을 친다. 제도는 형식성, 외식성을 강조하는 선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힘과 현실, 이권만이 판을 치는 것이 제도이다. 형식적 선과 내면의 악이 어우러진 것이 제도이다. 당회, 노회, 총회를 보면 명분은 그럴싸하지만 내면은 비신앙적인 요소가 비일비재하다. 교계가 제도주의의 우상에 빠져있는 것이다.
 
얼마전 고현정이 주인공이었던 인기 있는 드라마중에 대물이 있었다. 현실정치의 진면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제도주의에 빠진 정치인들과 주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려는 정치인의 갈등이 잘 연출되어 있다. 국회라는 제도를 통해서 국회의원들은 모두 면죄부를 받고, 마을주민이 아니라 당 총재나 대표, 자신들의 의견만 대의하는 것이다. 대의정치의 실종이다. 이러한 정치형태가 예수의 이름으로 그대로 교계에 옮겨졌다. 
 
이제 우리는 형식과 국가주의, 정치, 명예, 현실이권에 물든 제도주의의 우상을 배격해야 한다. 인간단체의 의지가 바벨탑으로 드러났듯이, 신앙이 없는 인간들의 결의는 결국 바벨탑이라는 제도주의로 쌓아올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언젠가는 허물어질 것이지만.
 
교계는 당회, 노회, 총회라는 제도를 통해서 함몰되어가는 그리스도의 정신, 영성을 다시 회복해서 노회는 목사의 노조가 아니라 목사의 견제장치로서 역할을 하고, 어려운 개교회들을 돌보고, 총회는 어려운 노회들을 볼보는 양육총회로서 역할을 해야하며, 당회는 목사나 장로들의 의지를 대변할 것이 아니라 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나아가 하나님의 의지를 대변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지도자의 독선     
 
이것은 비단 제도에만 있지 않다. 제도는 민주적인데 개인 리더는 지극히 권위주의적이거나 독선일 수 있다. 캐나다나 미국 이민교회에 있다 보면 가장 민주화가 잘 된 나라에서 한인교회는 유독 독선주의거나 권위주의 체제로 가는 독재공화국이다. 이것은 한국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국가와 제도가 민주화 되었다고 하더라도 리더가 독선적이고 권위적이면 그 제도나 단체는 독선이나 독재공화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장로교는 민주적인 단체인데 장로교의 리더가 독재적인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쉽게 말하면 당회가 독선이 아니라면 목사가 독선으로 가는 것이다.
 
독선은 자신을 섬기는 우상숭배
 
독선이나 독재는 하나님의 영보다는 리더의 영이 임하게 되어있다. 리더의 말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왕따 시켜버리거나 모든 물리력을 다해서 해당 단체에서 밀어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이민교회나 한국장로교단의 산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총회나 노회, 당회라는 단체의 독선과 교회내 리더의 독선이다. 결국 단체의 독선 아니면 개인의 독선이 교회에 나타나 교회분쟁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단체적 독선이나 개인적 독선이 있기에 한국장로교단은 울고 있는 것이다. 장로교회라는 민주제도의 틀안에 신도들의 의견을 무시한 당회의 독선과 당회를 무시한 목사의 독선이 있다.  이러한 제도적 개인적 독선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마저도 독선의 블랙홀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단체의 독선이든지 개인의 독선이든지 장로교제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비신앙적인 행위이다. 독선은 자신들의 생각이외에 다른 단체나 사람의 의견을 인정할 수 없고 상대편을 섬기는 자세가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정신에 벗어나는 것이다.
 
결국 자기를 섬기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배려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힘을 갖고서  자신을 섬기기 때문에 독선은 우상숭배이다. 결국 이러한 곳에서 그리스도는 떠나는 것이다. 그리스도마져 인간이 만들어 놓은 독선의 블랙홀에 빠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화이트홀에서 다시 부활한다. 한국교회가 다시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마져 빠뜨리게하는 독선의 블랙홀이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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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 광야2010-11-14 17:30:58

    부패와 타락의 길을 걷는 기독교가 개혁되고 혁신되는 길은 무엇일까요?
    지도자의 신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진실함이 없고 본인들의 명예와 이기심이
    하나님보다 앞서기 때문인데 어찌하면 좋습니까?
    아직도 이땅에 의인 10명은 있겠지요 우리모두 기도하며
    지도자들이 회개하고 신학교가 바로 설수있도록 노력합시다 아닌것은 아니요 할수있는
    용기가 필요할때입니다 황목사님 어려움 속에서 고생이 많습니다
    같이 기도하며 협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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