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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제일교회와 한국대형교회 자화상

  • 강제일
  • 입력 2011.06.29 16:43
  •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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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통부재, 차별적 계급의식, 비민주성과 폐쇄성, 제왕적 목회
황목사의 사임보다 더 큰 문제는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강북제일교회(강북교회) 황목사의 사임여부에는 큰 관심이 없다. 정확하게 말해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부차적인 문제로 본다. 현재까지 파악된 문제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문제는 향후 누가 담임목사가 되는가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북교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들에 관한 정확한 진상규명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하며, 이 사건을 계기로 교회다운 교회의 진수를 보여주는 정말로 좋은 교회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까지 파악된 강북교회 문제의 대부분은 다른 대형교회에서도 공통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에, 한국교회 전체 개혁에도 좋은 시사점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다시 말하면 본 글의 최종적인 목적은 교회다운 교회를 향한 모색과 나눔에 있다고 하겠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사도행전 2:44-47)”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았고, 따라서 전도는 저절로 되었다는 것이다. 노예제도가 생생히 살아있던 그 시절에 그들은 다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귀족과 노예의 구별이 없었고, 사도와 성도간의 구별이 없었고, 부자와 가난한 자간에 차별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교회는 어떤가? 세상과 똑같이 밥그릇 싸움을 하고, 사실상 신분제도와 같은 차별이 가득하다. 이런 교회 모습 속에서 어떻게 전도가 가능하고, 하나님은 물론 온 백성들에게 칭송의 소리가 나올까? 우리들의 삶의 방식을 돌이킬 차례이다. 

강북제일교회 게시판을 열어 소통문화 이룩해야

이제 강북교회 내에 온라인 소통은 없다. 홈페이지의 게시판은 굳게 닫혔고, 담임목사라고 하는 H목사의 메일주소는 물론 전화번호도 극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는 비밀정보에 해당한다. 이래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물론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이라도 게시판을 열고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장으로, 교회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외부에 각자의 주장을 반복하는 카페를 만들어 운용하는 것보다는 통합 운용을 할 때, 아무래도 성도들이 사실관계를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소통도 엉터리다. 대형교회인 만큼 소통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만들고, 그 단계 수도 줄여야 하건만, 현재 강북교회는 채널도 거의 없고, 단계 수도 너무 많아서 사실상 소통을 하고 싶지 않다고 노골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소통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담임목사의 경우, 외부 일이 너무 바쁘다고 하는데, 정말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일에 바쁜지, 아니면 비본질적인 일에 바쁜지를 생각해 볼 때, 우선순위가 한참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어찌되었든 소통의 부재와 관련해서 일관되게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와 같은 불통현상이 차별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교회를 구성하는 내부 구성원, 교회를 이루는 각 주체들 간의 차별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 강북교회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볼 수도 있고, 어떤 의미에서 꼭 강북교회 문제라고만 볼 수도 없기에, 이 시점에서의 언급 자체가 사실 문제의 초점을 희석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소통의 장애요인이 차별이라는 점을 수차례 언급한 바 있고,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다른 무엇보다 구성원간의 차별은 가장 악하고도 치명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강북교회는 이 같은 차별성이 지난 6년간 황목사를 통해 극도로 확대되고, 그 정도가 심하다고 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 부분은 한국의 모든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로 거듭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극복하고 없애야 하는 차별이라는 점에 주목해주기 바란다.
 
기독교인의 참된 가치는 삶으로 보여주어야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한 삶을,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다. 하지만 황목사가 무슨 가치를 보여주고 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고, 우리는 세상에 무엇을 보여주고 있을까? 길거리 전도가 아닌 삶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무엇일까? 공평과 정의, 나눔과 섬김, 화해와 용서 같은 것인가? 아니면 세상보다 훨씬 더 차별적이고, 독선적이고,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모습인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교회의 계급성과 차별

모두가 말을 꺼내기를 금기시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한국교회는 내부 구조 자체가 반성경적이고 차별적이다. 세상 모두가 다 알고 있지만 교회 자신만 모른다. 목회자들은 자신들만 ‘성직’이라 하고, ‘평신도’라는 이름으로 성도를 낮춰 부르고, 마치 다른 신분이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성도들끼리도 서로 간에 계급의식이 있고, 목회자와 목회자간에도, 목회자와 직원 간에도, 아무튼 관계가 있는 모든 곳에 차별이 존재한다. 다시 말하지만, 차이가 아닌 차별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안수집사들의 문제제기

우월의식과 선민의식, 신분 혹은 계급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국교회는, 우선적으로 구성원간의 관계에 대한 뒤틀림을 해소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강북교회의 경우 안수집사회는 황목사의 독단과 부패, 거짓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성도들은 ‘감히 어떻게 기름 부은 목회자에게 성도들이 문제 제기를 하고, 책임을 물을 수가 있느냐?’, ‘목회자는 하나님만이 심판하실 수 있다’ ‘담임목사를 몰아내는 것은 쿠데타이다’ 등과 같이 반응했다. 이는 목회자를 하나님과 동격으로 생각하는 이교적이고, 미신적인 확신이다.  

‘황목사 비리에 대한 진상조사를 하겠다’는 당회의 결정에 대해, ‘당회장 없는 당회의 결정은 간담회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장로들이 있는가 하면, 황목사 스스로는 ‘강단에 설 수 없다는 당회의 결정’을 무시한 채 강단에 서고 있고, 더 나아가 장로들이 나를 조사할 수 없다면서, ‘장로들의 진상조사 결정’에 불응하고 ‘3인 진상조사위원회’를 해산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만약 일반 성도나 직원이 이런 일을 했다면 어떻게 했을지는 생각해본다면, 이는 명백한 차별이요, 우월적 지위를 가진 자의 부당한 자기보호이다. 원칙이 무너진 이 상황을 바로 잡아야만 하고, 이미 드러난 것만으로도 즉각적으로 그의 직무는 중지되어야 하고, 현재진행형인 모든 불법과 정보은폐를 차단하는 조치를 촉구한다.


▲    6월 26일에 있었던 황형택 목사 복귀 저지 장면 - 에클레시안 제공  / 강제일
이제 역할과 질서의 문제가 계급의 문제로 확대된 한국교회에서, 다양한 사람들 간에 존재하는 차별을 살펴보도록 하자.

(1) 목회자와 성도간의 차별

본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나는 한번도 ‘평신도’라는 말을 쓴 적이 없다. 이는 목회자와 성도간의 차별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가장 비성경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늘 이 말을 만들어낸 사람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르긴 해도 이 단어 하나가 한국교회의 상황을 백년은 후퇴시켰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차별이 있는 나라로 바라보게 만든 참으로 악한 표현으로 반드시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 ‘평신도의 영성은 죽었다 깨어나도 목회자의 영성에 미치지 못한다“, ”평신도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잠자코 들어’, ‘너희가 목사될 거냐? 그렇게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게?(H목사가 고등부 예배에서 한말)’, ‘감히 평신도가 목사에게?’, 등등 평신도는 무지렁이이어야 하고 성경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검증이 안 된 아마추어이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목사의 수준에는 미칠 수 없다고 하는 터무니없는 오해를 만들어낸 주범이기 때문이다. 


평신도라는 말 자체가 왜 심각한 문제인가? ‘설교비평’이라는 책에서 C 목사는 자신의 설교에 대한 정용섭 목사의 비평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참 아름다운 목회를 소개하고 있다. 주일 설교를 성도들이 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설교권을 포기하는 것과 이웃의 아픔에 적극 참여하는 것과 같은, 성경말씀을 실천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다른 교회도 모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각 교회 나름의 특색 있는 노력이 있으면 한다는 생각이다. 그 와중에 그는 이 평신도라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언급하면서 이 단어가 바뀌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평신도가 있다는 것은 반대쪽에 ‘고급신도’가 있다거나, 혹은 ‘귀족신도’, ‘황제신도’가 있다거나, 혹은 ‘직업신도’가 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믿는 성경대로, 모든 성도들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는 모두가 목회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평신도라는 말 대신에 다른 말을 쓰자고 한다. 자신이 직접 만든 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목사라고 불리는 교회 안에서 섬기는 목회자들은 ‘교회목회자’라고 하고, 현재 평신도라 불리는 성도들은 ‘생활목회자’라고 부르자는 것이다. 만일 이 말이 교회 안에서 일반화되고 이것이 갖는 의미가 교회 안에 제대로 뿌리내린다면, 그는 한국교회 역사상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으로 기억될 만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말이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확신한다. 한국교회에서 ‘평신도’라는 말 안쓰기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교회는 교회목회자와 생활목회자간에 명확한 선을 긋고, 교회 운영을 포함한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 완전히 다른 신분의 사람들로 오인하게 만드는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교회는 성경말씀과 관련해서 설교권이니 뭐니 하는 것을 통해 오직 교회목회자들만이 말씀을 해석하고, 말씀을 나눌 수 있는 신분의 사람이라고 가르치는 반성경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이제 강북교회는 양육권이라는 것도 목회자에게 부여한다. 아래 글은 ‘H목사의 사임을 반대하는 카페’에 올라온 성도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다.

질문)교회 홈피에 온라인 성경공부방 개설하면 어떨까요??

올바른 성경의 이해와 지식이 바로 잡혀있어야 한다는 것에 다른 의견이 없을 것이라 여깁니다. 바쁜 일상과 육아로 인해 성경공부 하러 직접 교회에 가거나 주일날 따로 시간을 내는 것이 생각보다 그리 녹녹치 않습니다. 온라인 성경공부방을 개설해서 틈틈이 들어가 읽고 배우고 궁금한 것 리플에 달고 그러면 어떨까 해서요?

답변) H 담임목사님께서 허락하신 부목사님들의 성경공부 외에는 금지하여 주시기 바라며 교회 외에서 이루어지는 성경공부도 금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성경공부는, 자기 색깔을 드러내며 접근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그들의 미혹에 현혹될 수 있으니, 자신들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 까요? (온라인 성경공부방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도 신천지가 동영상으로 올라와서 모든 성도님들과 교역자님들이 초긴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말씀의 본질,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일이 그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그 분의 뜻을 명확히 드러내는 이유는, 말씀 그대로 삶을 살기위한 목적이다. 따라서 드러난 뜻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목회자나 성도들이나 동일하다. 목회자들이 삶으로 말씀을 드러낼 때, 비로소 온전한 전함이 되는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교회목회자들이 교회 내의 많은 부분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강북교회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해서, 아무리 작은 부서라고해도 모두 목회자들의 관리 하에 두는 구조로 재편되고, 그동안 ‘생활목회자’들이 하던 양육관련 모든 일들도 오직 ‘교회목회자’들이 담당하도록 함으로써 차별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예수님은 그저 입술로만 제자들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사는’ 방식으로 가르치셨다.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울고 웃으며, 몸으로 삶으로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드러내셨다. 대중선동가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삶속에 함께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입술로만 전하고, 헛된 자기 야망을 비전으로 포장하면서,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높인다. 

거짓과 불의가 가득한 삶을 살면서도 입으로는 거룩함을 말하고, 마치 엄청난 소명과 비전을 하나님께 직접 받은 양 떠들면서도 삶은 그대로인 모습을 보여줄 때, 그것을 보는 성도들의 삶은 그 모습을 닮아간다. 이 과정에서 예배는 ‘영화관’, ‘콘서트’를 보는 것과 같이 재미와 흥분은 있으나 변화는 없고, 성도들은 교회는 나오지만 진리와는 무관한 삶을 살게 된다. 목회자와 성도의 차별이 사라지고, 군림이 아닌 섬김으로 살아가는 모습만이 교회다움을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마20:28)"


(2) 목회자와 목회자간 차별

현재의 담임목사 제도는 자본주의 논리를 그대로 반영한 목회 시스템이다. 승자독식,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논리의 최고봉이라고 할만하다. 부목사들은 철저히 담임목사의 하부구조에 속한다. 말씀과 기도의 원래목적과는 동떨어진 행정목사라는 것이 대형교회에서는 대단한 특권이라도 되는 듯이 주어지고, 강북교회의 경우에는 비서실, 비서목사라는 이름이 버젓하게 통용된다. 

교회에서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관계는 일반 직장의 상사개념을 훨씬 뛰어넘는 관계라는 것이 정설이다. 강북교회의 경우 ‘황심’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황심'이라는 말을 들은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것 같다. 그 '황심'을 거역할 부목사라면 당연히 이 교회를 떠나야 할 것이다. 부목사는 사역을 같이하는 동반자 혹은 동역자 관계보다는 기본적인 대우에서부터 워낙 차이가 크고, 거의 모든 면에서 종속적인 관계이다. 강북교회 안에서 특별히 이루어지는 이들 간의 관계의 구체적 사례를 이야기하는 것은 생략하기로 하자. 부끄럽고 모욕적인 내용이 너무 많아, H목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성도들 사이에서도, 이 부분만큼은 부인하지 못하는 아주 특별한 영역이라는 것만 말하고 지나가겠다. 

강북교회 내부를 보면 모두 15명 내외의 전임 부목사가 있는데, 그들에게 부여된 자유는 극히 제한적이다. 다수의 부목사들 중에서도 특별히 신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통칭 비서실 멤버를 구상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차별적 소통을 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비서실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심지어 모종의 인센티브를 준다는 이야기까지 떠돌고 있다.

목회의 본질적 요소라고도 할 수 있는 성도를 보살피고, 심방을 하고, 교구를 관리하고, 교회안의 각종 부서를 돌보고, 중보 기도하는 것까지, 심지어 새벽기도를 인도하는 것 등등 모든 성도들과의 직접 대면이 필요한 일들은 모조리 부목사들의 차지이다. 이것은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우선순위인지에 대한 고민이 너무나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라도 담임목사가 자신의 동역자들인 부목사를 존중하고, 그들의 진로와 성장에 관심을 가져주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인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너무 좋겠다. 둘 간의 모습이 가장 민주적이고 수평적이라면, 그것을 보는 성도들의 마음이 얼마나 환해지고, 배우는 것이 많아질지를 생각하면 이 부분에 대한 개선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한국교회의 변화와 관련해서 부목사들의 역할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들이 바로 서고, 예수님 안에서 크게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미래와 관련이 있다.


(3) 목회자와 직원(간사)간의 차별

한국교회 안에서 가장 차별이 심하고 반성경적인 관계를 들라고 하면 바로 이곳일 것이다. 목회자와 직원, 이들 중 하나님이 그곳에 부르셔서 일하게 하신 진정한 소명자는 누구일까? 모든 이들의 대우와 존중을 받고 높임을 받는 목회자들이 소명자일까? 박봉에 아무의 인정도 없이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는 직원(간사)들, 그들이 진정한 사역자들일까? 하나님의 기름부음,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자라는 것이, 말씀을 전하는 자들에 국한된다는 이 비성경적 편협함이 교회안의 구조를 시작부터 어그러지게 만든다는 생각이다.

언젠가 힘들어하는 간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누가 함부로 한다 해도, 적어도 이 분야, 이 일만큼은 형제가 이교회 담임입니다. 부름 받은 자라는 확신가운데 거하고 기도하며 나아가야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대형교회는 누구에게 최상의 예우를 해야 할까? 오늘 이 소란함 속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직원일까? 아니면 이미 돈과 돈 이상의 모든 가치를 한껏 먹고사는 목회자들일까? 

이미 살펴본 대로 목회자간의 차별이 심한 강북교회 내에서, 목회자와 직원들 간의 관계는 더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그들에게 담임목사가 한 달에 한번이라도 따뜻한 관심과 환대를 해주면 좋겠고, 교회의 비전이나 중장기 계획 수립 등에 그들을 참여시켜 주인의식을 갖게 하고,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사역자로 세우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이 더 이상 무시해도 좋은 존재들로 취급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싶다.

성도들의 관심과 존경 면에서, 월급 면에서, 생각할 수 있는 다른 모든 면에서 평등과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출발점, 같이 일하고 같이 의논하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꿈꾸는 천국 닮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목회자와 직원 간에 나타나면 좋겠다. 목회자와 직원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에 할례가 필요한 것 같다. 생각하건대 바로 그것부터 변화가 일어나면 좋겠다.  

담임목사는 년 30%대의 임금인상에 카페 및 바자회 수익금, 수천만 원의 건강관리비, 억대의 판공비, 복수의 차량, 상상할 수도 없는 출장비와 안식년을 향유하는 반면에, 직원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5% 내외의 인상을 하고, 그들의 생각과 꿈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일이 강북교회 공동체에서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 똑같이 해달라는 것이 아니고, 최소한의 형제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통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보지 않겠는가? 나눈다는 것이 무엇인지,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을 살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믿음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지 않겠는가 말이다. 

▲  에클레시안 제공   © 강제일
(라) 성도와 성도간의 차별

장로교회에 속하는 강북교회의 경우를 예로 들면 생활목회자들은 장로, 안수집사, 권사, 서리집사, 성도라는 이름으로 나누어진다. 특별히 이들 속에서 소위 시무장로라고 하는 성도들이 주축이 되어 당회를 구성하고, 교회전체를 치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원래 강북교회는 안수집사, 권사, 장로는 성도들의 직접 투표에 의해 선출하고, 그들에게 일정한 권한을 위임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 같은 구조는 H목사 체제에서 편법을 통해 간접방식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간접적인 방식의 장로선출은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이는 담임목사가 사실상 장로를 지명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고, 이렇게 되면 담임목사에 대한 당회의 견제와 균형기능은 마비될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강북교회와 같이 장로와 거의 동수의 부목사들이 포함된 당회에서는 사실상 어떠한 견제도 불가능한 1인 통제 시스템, 소위 황제목회시스템의 출현이 불가피하게 된다. 하루속히 직접선출 방식으로 전환하고, 당회의 모든 기능의 정상적인 복원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목회자와 성도간의 차별과 함께, 성도들 간에도 항존직이라는 것이 있어 문제를 만든다. 한국교회가 바뀌려면 용어부터 바뀌어야 한다. 너무 비성경적인 용어들이 난무한다. 어떻게 이런 직분이 영원토록 항상 존재한다는 것인지? 섬김직이나 겸손직이나 뭐 이런 이름으로 임기직으로 운영되면 좋겠다. 아무튼 일부 성도들은 소위 항존직만 되면 교회 안에서는 일정 부분 자기 위상을 확보한다고 생각한다. 
 
부서장은 안수집사 이상만이 할 수 있다

강북교회는 황목사 이후 부서장이 되려면 최소한 안수집사 이상이어야 한다. 간선제로 변한 환경에서 직분이 그 사람의 믿음과 능력을 대변한다. 이 같은 제도적인 틀을 고착시킴으로써 강북교회는 성도들 간에도 일정한 간극을 만든다. 물론 황목사 이전에도 강북교회는 민주적인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졌다고는 볼 수 없다.
 
나름대로 건강한 교회라는 평판을 얻었고, 성도들 간의 친밀성이 뚜렷하고 수평적인 면이 많았지만, 당회와 다른 지체간의 관계는 조금은 멀었다. 각 부서에 관련된 모든 일들이 성도들의 의견결집을 통해 위로 올라가는 구조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가 결정한 내용을 받아서 처리하는 방식에 익숙한 시스템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 부서에는 기획을 하거나 핵심적인 내용을 결정하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이 전무했다. 이는 투명하고 건강한 의사소통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고, 이것이 결국 최근의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1인 통제 시스템을 가능하게 한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으로 교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그룹이 몇 십년동안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과 같은 장로라 하더라고 일정한 상하관계가 존재하였고, 당회가 내부적으로 민주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소수에 의한 독단적이고 불투명한 교회 운영이 바로, H목사가 단기간에 교회를 장악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리와 부정부패를 저질러도 막을 수가 없게 되는 상황을 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성도들 간의 관계가 수평적이고, 역할 중심의 투명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시스템이 있었다면 그 누구라도 마음대로 불법을 저지를 생각을 할 수가 없고, 교회는 본질적인 부분에 더 힘을 쏟을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너무 크다. 지금부터라도 형제의 넘어짐을 예방하는 차원에서라도 좋은 방안들을 마련하고 실천하기를 촉구한다.

아울러 오늘 교회 안에는 남녀 간의 차별이나 부에 의한 차별 등 많은 요소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 극심하다. 그들은 교회의 미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모든 면에서 우선순위가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하자. 그들은 교회의 엄연한 현재이고, 어릴 때의 삶은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고 그 자체가 삶이다. 그들을 어른 예배에 데려다가 찬양하나 시키고, 기도한번 해주는 것으로 대단한 관심이라도 있는 양 속이는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 이번 강북교회의 문제 속에서도 H목사가 진정으로 다음세대가 관심이었다면, 그는 결코 복귀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약하다는 것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어른들에게 관심을 쏟는 것 이상이 그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마치는 글 

모두가 금기시 하고 있지만, 오늘날 거의 모든 한국교회 안에는 실질적으로 신분, 계급이 존재한다. 이 말에 이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까? 차이를 차별로 만들고, 이를 시스템화해버린 카스트 제도가 교회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2000년 전 성경 속의 시각으로 봐도 충격적인 것이다. 노예제도가 생생이 살아있던 시대에도 교회 안에는 없었던 시각인 것이다.

반복해서 이야기 하지만 많이 받는다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함께 일하는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고 돌보지 않는 마음이다. 내가 하는 일과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엄청나게 다른 일로 차별하는 의식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목회자나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는 하나의 지체이다. 목회자는 몸 전체가 아니라 몸을 이루는 지체의 한 부분이다. 목회자가 교회의 머리는 더더욱 아니다. 만일 목회자가 몸이고 머리라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상이고, 처참하게도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한 것이 된다.
 
최근에는 어느 교회의 교육담당 전도사까지 나서서 목회자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을 두고, 이는 교회를 무너뜨리는 행위라 하면서, 목회자와 교회를 동일시하고, 이를 쿠데타라고 하고 있다. 일반 성도들이 아닌 목회자 후보들까지 이렇다는 것에 대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하는지 환부가 너무나 깊고, 상태가 중하다는 생각뿐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서로에게 동일한 형제들이다.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 간에 차별이 없는 세상, 최소가 아닌 최대한의 인격적인 대우와 존중이 살아 숨 쉬는 베이스캠프로서의 교회내부 시스템과 구성원간의 관계, 세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는, 얼마든지 ‘와서 봐라’할 수 있는 멋진 변화를 이야기 하는 것이, 꿈 속 혹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인지를 한국교회에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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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1

  • 강북제**2011-06-29 23:43:10

    소망교회담임목사의 사례비를 C E O의 보수에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개신교회의 목사들이 c e o 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담임목사와 부목사 또는 성도간에 노사관계 내지 주종관계화 되어가고 있다는것입니다 소통도 좋고 성경공부반도 좋지만 문제는 담임목사의 신앙양심과 인간양심입니다 불법과 탈법을 일삼는 대표적인 인물도 있습니다 황목사도 신앙적인 양심이 있는 사람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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