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성에 대한 신뢰는 철학적 실재론을 전제
재현은 대상을 포착할 능력이 있다는 인식론을 전제
재현(representation)은 본래적이고 전통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언제나 우리 외부에 우리와는 다른 독립적인 대상이 있고 우리 인식은 그 대상을 포착할 능력이 있다는 인식론을 전제한다. 여기에서 전제하는 재현의 의미는 물론 재현을 위한 재현, 즉 현대의 신사실주의의 재현은 배제했을 때 그렇다.
현대의 재현은 만약 그것이 유의미한 예술에 있어서라면 지우기 위한 전제나 단서를 가진다. 리히텐시타인이나 워홀의 재현이 실재를 직접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고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터이다. 그것은 재현을 비웃는 재현이며 하나의 유희적 재현이다. 재현을 포기하거나 지우기 위한 의미로서의 재현만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현대는 전통과 완전히 결별한다. 전통적 재현은 그것이 실재에 육박하는 것이라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에서 인상파까지 미술사, 실재는 존재한다
르네상스에서 시작하여 인상파에 이르는 미술의 역사는 어쨌건 실재(reality)는 존재하며 어떤 방식으로든지 우리는 이 실재에 우리를 일치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주고 있다. 시지각은 매우 당연한 것이었으며 미술에 있어서의 양식은 단지 이 시지각의 다양성-그리고 그 시지각을 뒷받침하는 세계관의 다양성-을 의미할 뿐이었다. 그들에게 대상은 “그 무엇”이었으며 하나의 명사였고 하나의 보편자였고 따라서 하나의 실재였다. 회화는 어쨌건 이 명사의 도열로 메워져야 하는 것이었다.
세잔의 혁명, 우리의 시지각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세잔이 미술사에서 일으킨 혁명은 우리 시지각이 단지 외부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하면 우리 시지각은 우리 사유로 부터의 스스로의 독자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세계관 혹은 우리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칸트의 표현대로라면 대상이 우리 인식에 준하는바-을 밝혔다는 데 있다.
세잔이 화폭에 기하학적 입체의 덩어리들을 그려 넣을 때-그의 “샤토 누아의 바위들”이나 “생 빅투아르산”에서 현저히 드러나는바- 그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은 먼저 시지각으로부터 자기 내면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유럽인의 눈은 세계를 망쳐왔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지성이상으로 우리의 시지각 역시도 편협한 것이라는 사실이 그의 마음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만약 세계가 표음문자와 같은 것이라면 어디에도 상형적 요소는 없어야 했다. 그는 가치중립적이고 비재현적인 입체를 내세워 재현을 벗어나고자 한다. 이것이 현대에의 길이었다. 이때부터 예술은 가차 없이 추상에의 길을 밟는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지성의 종합화 능력에 대한 의심에 기초
예술사상의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로 이르는 길은 우리 지성의 종합화 능력에 대한 의심에 기초한다. 말해온 바와 같이 지성은 언제나 개념 혹은 관념 그리고 그 시각적 대응물인 3차원적 입체를 구성한다. 우리의 시지각은 평면적이다. 어떤 시각도 회절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차원의 스크린만을 볼 뿐이다.
우리가 그 평면에서 무엇인가를 가리킬 때, 다시 말하면 분절 없이 이어진 평면에서 무엇인가를 가리킬 때 최초의 개념, 최초의 언어, 최초의 지성이 발생하게 된다. 개념 없이, 다시 말하면 재현 없이 지성은 없다. 예술사상의 고전주의로 일컬어지는 양식은 이러한 지성에 대한 신뢰가 가장 극단적인 경우를 가리킬 뿐이다.
지성에 대한 신뢰는 철학적 실재론을 전제
그러므로 지성에 대한 신뢰는 동시에 철학적 실재론을 전제하게 된다. 지성은 개념을 기초로 사유한다. 사실상 이 개념의 제조자가 지성이다. 이 개념이 필연적이고 선천적인 것이라는 이상한 전제가 없다면 지성에 대한 신뢰도 붕괴하게 된다. 손님이 오히려 주인이 될 때, 철학적 실재론 혹은 거의 같은 말이지만 철학적 합리론은 번성하게 된다.
영국의 경험론자들이 철학사에 있어서 일으킨 혁명은 이러한 개념의 선험성과 견고성에 대한 의심에서 비롯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지성 전체에 대한 전면적인 의심에서 비롯된다. 지성은 스스로의 소산이 오히려 스스로를 지배하도록 만든다는 것이 영국 경험론자들의 출발점이었다.
실재론자들은 개념의 도열과 연쇄에 지성을 가두었다
다시 말하면 지성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 오히려 지성 이전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가정함에 의해 실재론자들은 개념의 도열과 연쇄에 지성을 가두고 말았다는 것이 경험론자들의 생각이었다. 이 의심은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진 것이었다. 개념이 경험의 누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거기에는 어떤 실재론적 선험성은 없다. 왜냐하면 경험은 단지 습관을 가리킬 뿐이지 보편이나 필연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귀납적 사례의 모음일 뿐이다.
그러나 귀납적 사례는 전체의 것, 혹은 미래의 것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우리 개념의 형성이 경험론자들이 추론하는 바에 따른다면 지성은 단지 감각을 좇아가는 것이며, 따라서 개념은 사태의 한 결과일 뿐이지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결과물이 오히려 세계의 원인을 이룬다는 주장은 인과혼동의 오류라는 것이 영국 경험론자들의 숨겨진 주장이었다. (비평과 논단 내용중 일부)
조중걸박사는 서울대, 소르본느, 예일대, 시카고대학에서 예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열정적 고전읽기" 12권,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 키치"가 있다.
재현(representation)은 본래적이고 전통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언제나 우리 외부에 우리와는 다른 독립적인 대상이 있고 우리 인식은 그 대상을 포착할 능력이 있다는 인식론을 전제한다. 여기에서 전제하는 재현의 의미는 물론 재현을 위한 재현, 즉 현대의 신사실주의의 재현은 배제했을 때 그렇다.
현대의 재현은 만약 그것이 유의미한 예술에 있어서라면 지우기 위한 전제나 단서를 가진다. 리히텐시타인이나 워홀의 재현이 실재를 직접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고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터이다. 그것은 재현을 비웃는 재현이며 하나의 유희적 재현이다. 재현을 포기하거나 지우기 위한 의미로서의 재현만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현대는 전통과 완전히 결별한다. 전통적 재현은 그것이 실재에 육박하는 것이라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에서 인상파까지 미술사, 실재는 존재한다
르네상스에서 시작하여 인상파에 이르는 미술의 역사는 어쨌건 실재(reality)는 존재하며 어떤 방식으로든지 우리는 이 실재에 우리를 일치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주고 있다. 시지각은 매우 당연한 것이었으며 미술에 있어서의 양식은 단지 이 시지각의 다양성-그리고 그 시지각을 뒷받침하는 세계관의 다양성-을 의미할 뿐이었다. 그들에게 대상은 “그 무엇”이었으며 하나의 명사였고 하나의 보편자였고 따라서 하나의 실재였다. 회화는 어쨌건 이 명사의 도열로 메워져야 하는 것이었다.
세잔의 혁명, 우리의 시지각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세잔이 미술사에서 일으킨 혁명은 우리 시지각이 단지 외부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하면 우리 시지각은 우리 사유로 부터의 스스로의 독자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세계관 혹은 우리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칸트의 표현대로라면 대상이 우리 인식에 준하는바-을 밝혔다는 데 있다.
세잔이 화폭에 기하학적 입체의 덩어리들을 그려 넣을 때-그의 “샤토 누아의 바위들”이나 “생 빅투아르산”에서 현저히 드러나는바- 그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은 먼저 시지각으로부터 자기 내면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유럽인의 눈은 세계를 망쳐왔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지성이상으로 우리의 시지각 역시도 편협한 것이라는 사실이 그의 마음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만약 세계가 표음문자와 같은 것이라면 어디에도 상형적 요소는 없어야 했다. 그는 가치중립적이고 비재현적인 입체를 내세워 재현을 벗어나고자 한다. 이것이 현대에의 길이었다. 이때부터 예술은 가차 없이 추상에의 길을 밟는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지성의 종합화 능력에 대한 의심에 기초
예술사상의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로 이르는 길은 우리 지성의 종합화 능력에 대한 의심에 기초한다. 말해온 바와 같이 지성은 언제나 개념 혹은 관념 그리고 그 시각적 대응물인 3차원적 입체를 구성한다. 우리의 시지각은 평면적이다. 어떤 시각도 회절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차원의 스크린만을 볼 뿐이다.
우리가 그 평면에서 무엇인가를 가리킬 때, 다시 말하면 분절 없이 이어진 평면에서 무엇인가를 가리킬 때 최초의 개념, 최초의 언어, 최초의 지성이 발생하게 된다. 개념 없이, 다시 말하면 재현 없이 지성은 없다. 예술사상의 고전주의로 일컬어지는 양식은 이러한 지성에 대한 신뢰가 가장 극단적인 경우를 가리킬 뿐이다.
지성에 대한 신뢰는 철학적 실재론을 전제
그러므로 지성에 대한 신뢰는 동시에 철학적 실재론을 전제하게 된다. 지성은 개념을 기초로 사유한다. 사실상 이 개념의 제조자가 지성이다. 이 개념이 필연적이고 선천적인 것이라는 이상한 전제가 없다면 지성에 대한 신뢰도 붕괴하게 된다. 손님이 오히려 주인이 될 때, 철학적 실재론 혹은 거의 같은 말이지만 철학적 합리론은 번성하게 된다.
영국의 경험론자들이 철학사에 있어서 일으킨 혁명은 이러한 개념의 선험성과 견고성에 대한 의심에서 비롯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지성 전체에 대한 전면적인 의심에서 비롯된다. 지성은 스스로의 소산이 오히려 스스로를 지배하도록 만든다는 것이 영국 경험론자들의 출발점이었다.
실재론자들은 개념의 도열과 연쇄에 지성을 가두었다
다시 말하면 지성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 오히려 지성 이전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가정함에 의해 실재론자들은 개념의 도열과 연쇄에 지성을 가두고 말았다는 것이 경험론자들의 생각이었다. 이 의심은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진 것이었다. 개념이 경험의 누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거기에는 어떤 실재론적 선험성은 없다. 왜냐하면 경험은 단지 습관을 가리킬 뿐이지 보편이나 필연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귀납적 사례의 모음일 뿐이다.
그러나 귀납적 사례는 전체의 것, 혹은 미래의 것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우리 개념의 형성이 경험론자들이 추론하는 바에 따른다면 지성은 단지 감각을 좇아가는 것이며, 따라서 개념은 사태의 한 결과일 뿐이지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결과물이 오히려 세계의 원인을 이룬다는 주장은 인과혼동의 오류라는 것이 영국 경험론자들의 숨겨진 주장이었다. (비평과 논단 내용중 일부)
조중걸박사는 서울대, 소르본느, 예일대, 시카고대학에서 예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열정적 고전읽기" 12권,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 키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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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이후 헤겔 그리고 맑스에 이르기까지는 단순 인간들의 관념과 경험에 의한 것으로 차단된 인식 경험만을 연구 대상으로 한정시켰다. 결과적으로 경제 관계로 축소시키는 한정된 인식을 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판명한 것은 초월적 영적 인식에 관한 데카르트 이전, 곧 소크라테스 플라톤 이전,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이미 논의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현대에 근대의 종언이라는 협의 왜곡의 경향은 인간 두뇌의 주체적이 아닌 피동적 초월적 외부의 주어진 경험이라는 종교적 인식을 배제하는 오류 속에 있는 것이다. 단순히 유전적이고 인간 내적이라 할 수 있는 선험적 경험의 입장에서야 부정될 수 있어서 독일의 관념론과 영국의 경험론 그리고 합리주의 등이 현상에 대한 인식을 보이는 것으로 한정 시키는 문제는 종언되어야 한다고 보지만 그러나 인간 초월적 위로부터 오는 인간 피동적 인식능력까지 배제시켜버린 현대의 철학과 미학의 입장은 재고 재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메를로 퐁티 정도의 인식으로 치닫는 현대 예술철학 등은 이제 논의의 폭을 확장시켜야 한다. 인류가 누적해 온 감각에 기초한 지적 인식이 뇌과학과 점맥되면서 인간 한계를 돌파하되 인간에 주어지는 영역까지 연구 대상이 되어야 하고 된다고 인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