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천, 제자, 분당 중앙, 강북제일, 소망, 경신, 광성교회 등은 당회기능의 실종
최근 한국교회에서 분규가 일어나는 교회는 대부분이 당회의 문제이다. 산헤드린 당회는 형식에 치우친 당회로서 목회자와 잦은 갈등과 대립, 맹목적 순종, 창조성의 결여, 기득권의 유지, 대의정치의 실종 등으로 인해 교회성장보다는 교회퇴보를 가져오고 있다. 산헤드린 당회로 전락한 교회는 끊임없는 주도권잡기, 재정불투명등으로 인해 예수의 정신과 상관없이 신앙없는 교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당회는 신도들의 대의와 하나님뜻의 대의보다는 카리스마틱한 목사의 입장이나 당회원들 자신들의 뜻만 대의하여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당회이다. 그야말로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한 산헤드린 당회이다.
오늘날 많은 산헤드린 당회가 예수의 정신과 의지, 뜻을 거부해 보이지 않는 예수를 죽이고 있다. 목회자 역시 당회원들보다는 자신의 의지만 관철하려 하여 자신의 뜻만 대의하고 있다. 이러한 목회자는 산헤드린 당회장이다. 장로도 마찬가지이다. 무조건 목사발목잡기를 하여 산헤드린 당회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 없는 당회를 서로 운영하고 있다. 기도로 시작하거나 성만찬으로시작한 당회가 몰상식의 당회로 전락하여 대립과 갈등만 부추키고 있다. 교회가 성장하지 않아도 당회원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최근 강북제일교회를 비롯 봉천교회, 소망교회, 제자교회, 광성교회, 분당 중앙교회, 삼일교회 등 많은 교회들이 당회의 기능이 실종했기 때문에 교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봉천교회는 당회장내지는 당회원들이 법을 위반하고, 소망교회는 김지철목사가 법을 위반하고 주도권을 차지하려 하고, 제자교회는 당회원들이 정삼지목사에게 맹목적 순종을 하여 탈법 비리를 옹호하고, 분당중앙교회, 경신교회는 당회원들이 신도들의 뜻을 거부하고 담임목사의 부도덕을 옹호하고 있다.
광성교회는 당회원들이 무임목사를 담임목사로 추대하려하고 있고, 심지어는 무임목사를 전도목사로 만들어서 임시당회장으로 청빙하려는 탈법을 저지르고 있다. 총회재판국에 올라온 사건들은 대부분이 장로와 목사와의 갈등으로 당회의 문제이다.
이와 같이 한국교회가 교회 문제로 시름하는 것 중의 하나는 당회기능의 실종이다. 산헤드린 당회로 전락한 것이다. 이것은 장로교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를 가나 일어나는 현상이다. 다만 그 경중의 유무에 있을 뿐이다. 장로교의 종주국인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스코틀랜드 역시 당회의 갈등이 일어나기는 매한가지이다.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미장로교의 당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장로교처럼 몰상식적이지는 않다.
이러한 것은 오랜 교회 역사와 민주주의 제도는 훌륭하지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인간의 나약함이 차마 이를 쫓아가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특히 한국교회는 장로교회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보다 빈번하게 당회의 갈등이 나타난다.
한국교회는 교회의 짧은 역사나 험난한 정치적 역사를 고려해볼 때 당회를 진행하는 요령에 있어서 많은 서투름을 가져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봉천교회 사태는 소수의 당회원들이 다수의 당회원들을 권징하고, 총회가 이를 인정해 준 대표적인 당회정치실종의 사건이다.
이처럼 한국교회가 분리되는 요인중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서투른 당회운영으로 인한 당회(운영위원회)의 갈등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당회가 안정되면 교회가 안정되고 당회가 불안한 교회는 가지 많은 나무 바람잘 날이 없는 것처럼 늘 내홍에 시달리는 것이다. 현대의 목회는 당회의 목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회는 교회의 머리를 차지하는 교회의 정치 및 행정, 영적인 일을 담당하는 교회의 최고 회의(governing body)기관 이다. 이와같이 당회는 교회의 머리인 만큼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영적으로 활성화 시켜야 할 책임이 막중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살찌우기 위해서는 당회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건강한 당회를 만들기 위해서 당회의 정의, 기원, 속성, 기능, 종류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1) 당회의 정의
당회는 우리말로 말하면 말 그대로 ‘예배당에서 모인 것’을 말한 것이다. 영어에서 당회는 “Session"으로서 그 말의 의미는 ”sitting together" 즉, ‘함께 앉아있는 것’을 말한다. 헬라어로는 우리가 잘 아는 산헤드린(Synedin)이 당회의 뜻을 대신한다. syn(함께)과 hedrin(앉다)의 합성어이다. 헬라어의 의미 역시 ‘함께 앉아 있는 것’으로 풀이 될 수 있다. 쉽게 요약하면 당회의 정의는 교회에서 대표성을 띤 사람들이 어떤 목적을 갖고 협의점을 끌어내기 위해 함께 모여 앉아있는 것이다.
2) 당회의 기원
당회의 기원은 창세기에 잘 나타난다.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하나님의 회의인 성회가 있었다(창1:26). 세상을 창조하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어서 성부, 성자, 성령이 회의를 한 것이다. 시편 82:1절의 “하나님이 하나님의 회 가운에 서시며 재판장들 가운데서 판단하시되” 말씀에 분명히 하나님의 회의에 관한 언급이 있다. 이것이 구약 성경에 나오는 성회인 것이다. 그런 회의가 있었기에 성령이 창조의 전초전으로서 수면 위에 운행하여 창조를 준비하고 있었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게 된 것이다. 우리는 창세기 1:26절에서 하나님의 창조회의를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고 했던 것이다.
창조사역에 회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회의 기원은 하나님의 회의인 성회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회의인 성회는 성경에서 여러번 나타난다. 따라서 당회의 기원은 하나님의 성회에 그 기원이 있고 인간적인 기원에서는 구약시대 모세로 거슬러 올란간다. 모세가 하고자 하는 일이 너무 벅차자 그의 장인 이드로는 사람들을 대표로 뽑아서 일을 분담하라고 귀뜸을 했다.
그러자 모세는 70인의 장로를 세운다(민11:16-17). 이것이 대의정치의 시작이다. 이 70인의 장로제도는 보다 발전하여 나중에 로마식민지 시대에 산헤드린 공의회가 되는 것이다. 이 산헤드린은 이스라엘의 최고 기관으로서 국가의 대사 및 종교에 관한 일들을 결정하였다. 초대 기독교 역시 이 산헤드린의 제도를 그대로 본따서 장로제도를 따로 두고 교회의 교리적인 문제가 있을 경우, 지금의 장로급에 해당하는 교회의 각 대표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서 오늘날의 노회처럼 회의를 했던 것이다(사도행전 15장).
그것이 예루살렘 공의회이다. 이처럼 오래 전 부터 이미 대의정치가 구약과 신약의 시대를 통해서 실현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신약에 보면 지역이나 교회의 장로의 회에서 안수를 주는 사례가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디모데가 장로의 회에서 안수를 받는다(딤전4:14). 이러한 대의기관의 제도를 본따서 종교개혁 시대에 존칼빈이 제네바 교회를 개혁하면서 당회제도(consistory)를 만든다.
이것은 지금의 당회제도와는 조금 다르지만 일단 개신교의 기원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을 제도화한 사람이 스코틀랜트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이다. 그는 의회의 인준을 통해서 장로교를 최초로 만든 개혁자이다. 낙스는 칼빈의 교회정치 구조를 그대로 채택했던 것이다.
3) 당회의 기능: 영적기능과 정치적 기능
교회의 최고회의로서의 당회는 두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정치적인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기능이다. 정치적 기능으로서 당회는 교회의 법규인 내규를 정하기도 하는 입법의 기능도 있고, 비행교인의 징계절차를 심의하기도 하는 사법기관의 역할도 하며, 교회의 행정과 예산을 심의, 관장하는 행정기관의 역할을 한다. 영적인 기능으로서 당회는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지도를 하며, 예배와 관련된 성만찬 사역에 봉사를 하며, 교회집사들을 교육시키며 아프고 어려움에 처한 자를 심방하기도 하는 영적인 기능이 있다.
또한 목회자와 관련한 일에 있어서 목회자를 협조하기도 하고 때로 목회자의 비행이나 비상식적인 행위가 있을 때는 교인들의 영적 생활을 위하여 그를 견제하는 일을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당회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그것은 영적인 기능은 사라지고 정치적 기능만 남은 데 있다. 사실 당회원으로서 목회자를 대신하여 혹은 목회자 부재시, 성도들을 관리하고 돌보며 상담하고 심방하는 당회원이 몇이나 되는가? 현실적으로 아주 힘든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풀타임 목회자를 고용해서 모든 일을 다 감당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목회자는 영적인 리더자뿐 아니라 본의 아니게 정치적인 리더자의 기능까지 도맡아 하게되는 것이다. 목회자의 권한은 주로 영적인 기능에만 국한해야 하는데 정치적 기능까지 도맡게 되니 갈등을 유발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당회의 일랸의 문제는 기능상 정치적인 일과 영적인 일의 혼동속에서 오는 것이다. 목회자의 영적인 일에 대한 무지와 교회행정의 독주, 장로들의 행정능력의 결여와 지나친 목회간섭과 영적인 일의 태만에서 갈등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자의 정명사상 처럼 가르침을 위해 부름을 받은 장로는 이름 그대로 가르침과 심방 등 주로 영적인 일에 관심을 쏟고, 행정을 위한 치리 장로는 이름 그대로 행정을 위하는데 자기의 역할을 하면 어려움이 없는데 서로의 역할을 혼돈하고 자리를 찾지못하는데서 어려움이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서로의 역할 분담이 안되고 모두 영적인 기능보다 정치적인 기능을 선호할 때 갈등과 아픔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 기능을 선호할 때는 사단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율법적 당회가 되는 것이고 영적 기능을 선호할 때 하나님의 창조성과 의지를 반영하는 성회로서의 당회가 되는 것이다.
4) 당회의 속성: 율법적 당회와 성회로서의 당회
a. 율법적 당회
당회에서 가장 잘 일어나는 문제는 리더십, 즉 주도권에 관한 것이다. 목회자의 카리스마틱한 리더십의 결과로서 오는 곳으로, 이를 제동하고 제어하려는 장로들과 계속 연장하고 누리려는 목회자간의 줄다리기와 마찰이 손쉽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반대로 기득권을 쥔 장로들과 이것을 허물려는 목회자의 갈등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피해는 성도들에게 돌아간다.
이것은 영적 기능이 상실된 목회자와 당회원들의 에너지가 정치적 에너지로 화하면서 서로의 갈등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근거가 없는 장로와 목회자의 갈등, 장로간의 갈등은 없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분명히 어느 한쪽의 개인적 야심과 이기주의, 무지, 성급함, 잘못된 정치적 의도, 집요한 주장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거룩의 이름으로 가려질 따름이다. 앞에는 영성을 표방하지만 이면에는 정치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율법적 당회인 것이다. 회칠한 무덤처럼 안과 밖이 다른 것이다. 율법이 사단에게 이용당하듯이 율법적 당회 역시 사단에게 이용당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칼빈의 얘기대로 영적인 어머니로서의 교회, 성령의 기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인 당회, 하나님의 부름 받은 사역자로서의 목회자, 장로라는 거룩한 이름 뒤에 죄가 틈을 타서 그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든 거룩한 계명 뒤에서 사단이 역사하듯이(롬7:8) 성직자와 기름 부은 받은 사람들의 집단인 당회 뒤에서 사단이 역사를 하는 것이다.
b. 성회로서의 당회: 창조성과 이중대의성
1. 창조성
당회는 인간의 회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회의인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몸된 교회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 자신들의 대리자를 세워서 그의 몸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회의를 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회는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창조를 위해서 새로운 일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창조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흠집잡기나 싸움터가 되어서는 안되고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토론이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웃와 사회를 위해, 그리고 선교영역의 확장을 위해, 성경공부의 리더자 양육과, 수시로 변하는 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교회의 대응전략, 전산화된 교회 행정, 구역시스템 등에 대한 새로운 사역들이 계속 창조될 수 있도록 건건하고 합리적인 마인드를 갖고 토론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당회의 영적인 기능이며 이 영적인 기능은 창조성이외에 대의정치로서 승화될 수 있어야 한다.
2. 이중 대의성: 하나님의 대의와 성도들의 대의
당회는 대의정치로서 이중적인 기능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대의 정치와 민주적 대의정치의 속성을 갖고있는 것이다. 당회는 아래에서는 민주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이자 만인 제사장인 성도들의 의견을 대신하고 위로는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여 하나님의 의지를 대신하는 이중의 대의성을 띤 영적인 성회인 것이다. 교회사를 보면 하나님이 이단들을 막기위해서 공의회를 통하여 역사했던 것이다. 회의는 그만큼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는 모임인 것이다. 그래서 신중하고 분별있게 한님의 뜻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많은 교회의 당회들이 이런 이중성의 대의정치는 함몰한 채 자신의 생각만을 대의하는 봉건전제 정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즉 성도들과 하나님의 입장은 제쳐놓고 자기의 입장만을 말하거나 목회자를 포함한 상대방의 흠집내기로만 일관한 채, 총칼 없는 언어의 전쟁터로 변신하고 있다. 심지어는 당회가 열릴때마다 욕설과 고성이 오가서 성도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더 이상의 거룩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뜻은 마다하더래도 인간이 만들어 놓은 민주주의 상식의 정치, 대의의 정치 조차 거부하고 있다. 목회자는 당회장이라는 거룩의 이름으로 전제군주처럼 독선적 리더십과 비상식적인 결정을 하고 당회원들은 당회의 기본 기능과 역할의 무지로 인해 성도들의 의사는 반영도 하지 않고 자신들의 입장만 고집하여 당회장의 의사에 무조건 맹종을 하거나, 아니면 무조건 목회자의 발목을 잡는 대의정치의 부재속에 처해있다. 이것은 당회의 본질적 기능인 이중적 대의성을 간과하는 것이다.
이처럼 당회가 창조성과 이중적인 대의성을 무시하고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것이 중심이 되었을 때 교회의 퇴보와 분리, 갈등을 부추켜 결국 교회는 특정인 중심으로 전락하고 내분이 일어나 사단의 의도대로 베드로파, 아볼로파, 바울파로 나뉘게 되어 공중분해되거나 사색당파로 찌든 이씨조선의 말년처럼 되는 것이다.
창조성과 대의성이 결여된 당회는 영적으로 무지하게 되어 교회성장은 멈춤 상태에 있고 전통주의에 빠져서 가족교회로 되거나 교회내 기득권을 가진 측근들 위주로의 교회로 되어, 더 이상의 개혁이나 발전은 없고 어제의 교회가 오늘의 교회로 되고, 오늘의 교회가 그대로 변함없이 내일의 교회로 퇴보하여 타이타닉 교회가 되는 것이다. 즉 미래가 없는 교회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머리인 당회의 기능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5) 당회의 힘의 주체: 개인의 power 와 단체의 power
우리가 흔히 장로교라고 말했을 때는 성도들의 대표성을 띤 장로가 정치를 하는 교단이다. 정치구조는 대의정치로서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같은 기능이 있다. 당회원들은 교회의 국회의원인 것이다. 교회의 의회로서의 당회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재정과 행정, 치리, 인사 등과 관련한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한국교회는 당회보다 당회장이 막강한 권한을 갖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것은 누가 그 교회의 선입주와, 교회의 공헌도에 따라 좌지우지 된다.
그 교회를 개척했거나 성장시킨 목회자는 자동적으로 교회에서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여 독주를 하는 경우가 더러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당회 갈등요인 중의 하나는 힘있는 당회장이 독주를 하거나 자신의 임의대로 교회를 끌고 가고자 했을 때 당회원들과 충돌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와 서양교회가 다른 것이 하나있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경우는 개인의 권한(personal power)이 강한데 비해 서양교회는 단체의 권한( cooperate power)이 강하다. 그래서 서양교회(미국교회)의 당회장은 당회시 한국교회의 당회장 처럼 말 그래도 moderator이지 무엇을 결정하거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교회 렌트 하나 결정할 힘이 없다. 단체의 힘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람 잘날 없는 교회를 보면 특정 개인의 권한이 강하고 불투명하며 밀실에서 은밀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반면 시스템이 견고하고 건강한 교회를 보면 사적인 power 보다 단체의 power가 영향력을 행사하여, 투명하고 정직하고 양심적인 일처리를 한다. 이것은 일반 정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전제군주시대는 개인의 power가 강하지만 민주주의 시대에서는 민이 주가 되는 단체의 power가 강하다.
그래서 건전한 당회를 이끌기 위해서는 특정 개인의 power보다는 단체의 power로 힘의 이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회가 power가 있다고 해서 자신들을 선택해준 민의, 즉 교인들의 의사를 져버리고 당회원들끼리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면 정치적이거나 법적으로 하자가 없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이스라엘의 정치집단인 산헤드린 처럼 타락한 정치적 당회로 전락하는 것이다.
6) 당회의 모델: 산헤드린 공의회와 예루살렘 회의
이러한 당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당회 위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는 곳에 창조의 역사가 있는 법이다. 당회를 시작하기 전에 일주일전부터 기도를 하며 인간의 뜻이 스며들지 않고 마가 다락방에 임한 성령 처럼 그 당회에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도록 영적으로 준비를 해야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목소리만 범람을 하고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 사고나 편협적인 생각들만 판을 쳐서 예수를 처형하기로 결정한 ‘산헤드린 공의회’ 처럼 되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연구하고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그들이 합의해서 내리는 결정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죽이라는 비신앙적 행위이다. 이것은 당회위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창조성이 사라지고 파멸만 남게되는 대표적인 예인 것이다. 그 당회 위에 마가 다락방의 성령이 내리지 않으니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결정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당회는 있되 성령이 없는 당회가 많은 것이다.
성령이 역사하는 당회는 무언가 다르다. 성령이 임하는 당회의 예를 들어보자.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회의(헬라어로는 똑같이 산헤드린)는 더 이상 율법에서 요구하는 할례나 정결례, 특정한 날지키기를 요구하지 않고 이방인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가결을 한다. 더 이상 형식과 기존 전통에 치우치지 않고 배타성을 뛰어넘어 보편성을 띠게되는 성령이 역사하는 결정이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서 하나님의 복음은 땅끝까지 퍼져나가 한반도까지 이르게 되었다. 당시에 예루살렘 당회가 유대 배타주의에 젖어서 성령의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영원히 복음을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성령의 결정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리라”는 말씀대로 무한대로 역사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성령이 운행하는 당회이다.
성령이 역사하는 당회는 복음이 땅끝까지 퍼지는데 앞장을 서지만 성령이 역사하지를 않고 인간의 영이 역사하는 당회는 정치적인 성향을 강하게 띠게되어 복음증거나 봉사, 선교보다는 주방사역과 인간적인 교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러한 교회의 대부분의 특징은 목회자를 포함한 특정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적인 power가 강하게 나타나 바람잘 날 없어서 겉으로는 교회의 모습을 띠지만 안으로는 인위적인 냄새가 가득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선교는 하되 불렵화음이 많으며 식탁교제는 하되 음식에만 관심을 갖고 서로에 대한 소문만 무성하고 영적인 교제가 증발한 교회이다.
성경공부와 예배, 찬양은 있되 감격과 변화와 간증이 없다. 내실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산헤드린(당회)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산헤드린이 아니다. 예루살렘 공의회 처럼 영적인 산헤드린이 있고 예수를 죽이는데 앞장선 정치적인 산헤드린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현재의 당회가 어떤 특징의 당회인지 구분을 할 수가 있어야 한다. 산헤드린 당회인지, 예루살렘당회인지 말이다.
구시대와 전통에 치우쳐 개혁의 열망 없이 현재의 주어진 상태를 만족하고, 창조성이 종식되며 교회내 특정그룹이나 특정 당회원의 개인적인 power가 강하고 성도들의 의사와 하나님의 의사를 무시하여 이중적인 대의성이 증발한 인간의 영이 역사하는 정치적인 산헤드린인지, 아니면 예루살렘 당회처럼 개인보다 공익을 앞세우고, 보다 사적인 교제나 인위적 활동보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영적인 일에 치우치고, 특정목사나 개인보다는 단체의 power가 앞서고, 성도들의 의사와 하나님의 의지를 반영하는 이중대의성에 충실한 성령이 역사하는 영적인 당회 인지 점검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예수를 죽이는 산헤드린 당회를 선택해야할 지, 예수를 살리는 예루살렘당회를 선택해야할 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러한 당회는 신도들의 대의와 하나님뜻의 대의보다는 카리스마틱한 목사의 입장이나 당회원들 자신들의 뜻만 대의하여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당회이다. 그야말로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한 산헤드린 당회이다.
오늘날 많은 산헤드린 당회가 예수의 정신과 의지, 뜻을 거부해 보이지 않는 예수를 죽이고 있다. 목회자 역시 당회원들보다는 자신의 의지만 관철하려 하여 자신의 뜻만 대의하고 있다. 이러한 목회자는 산헤드린 당회장이다. 장로도 마찬가지이다. 무조건 목사발목잡기를 하여 산헤드린 당회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 없는 당회를 서로 운영하고 있다. 기도로 시작하거나 성만찬으로시작한 당회가 몰상식의 당회로 전락하여 대립과 갈등만 부추키고 있다. 교회가 성장하지 않아도 당회원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최근 강북제일교회를 비롯 봉천교회, 소망교회, 제자교회, 광성교회, 분당 중앙교회, 삼일교회 등 많은 교회들이 당회의 기능이 실종했기 때문에 교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봉천교회는 당회장내지는 당회원들이 법을 위반하고, 소망교회는 김지철목사가 법을 위반하고 주도권을 차지하려 하고, 제자교회는 당회원들이 정삼지목사에게 맹목적 순종을 하여 탈법 비리를 옹호하고, 분당중앙교회, 경신교회는 당회원들이 신도들의 뜻을 거부하고 담임목사의 부도덕을 옹호하고 있다.
광성교회는 당회원들이 무임목사를 담임목사로 추대하려하고 있고, 심지어는 무임목사를 전도목사로 만들어서 임시당회장으로 청빙하려는 탈법을 저지르고 있다. 총회재판국에 올라온 사건들은 대부분이 장로와 목사와의 갈등으로 당회의 문제이다.
이와 같이 한국교회가 교회 문제로 시름하는 것 중의 하나는 당회기능의 실종이다. 산헤드린 당회로 전락한 것이다. 이것은 장로교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를 가나 일어나는 현상이다. 다만 그 경중의 유무에 있을 뿐이다. 장로교의 종주국인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스코틀랜드 역시 당회의 갈등이 일어나기는 매한가지이다.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미장로교의 당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장로교처럼 몰상식적이지는 않다.
이러한 것은 오랜 교회 역사와 민주주의 제도는 훌륭하지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인간의 나약함이 차마 이를 쫓아가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특히 한국교회는 장로교회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보다 빈번하게 당회의 갈등이 나타난다.
한국교회는 교회의 짧은 역사나 험난한 정치적 역사를 고려해볼 때 당회를 진행하는 요령에 있어서 많은 서투름을 가져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봉천교회 사태는 소수의 당회원들이 다수의 당회원들을 권징하고, 총회가 이를 인정해 준 대표적인 당회정치실종의 사건이다.
이처럼 한국교회가 분리되는 요인중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서투른 당회운영으로 인한 당회(운영위원회)의 갈등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당회가 안정되면 교회가 안정되고 당회가 불안한 교회는 가지 많은 나무 바람잘 날이 없는 것처럼 늘 내홍에 시달리는 것이다. 현대의 목회는 당회의 목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회는 교회의 머리를 차지하는 교회의 정치 및 행정, 영적인 일을 담당하는 교회의 최고 회의(governing body)기관 이다. 이와같이 당회는 교회의 머리인 만큼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영적으로 활성화 시켜야 할 책임이 막중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살찌우기 위해서는 당회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건강한 당회를 만들기 위해서 당회의 정의, 기원, 속성, 기능, 종류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1) 당회의 정의
당회는 우리말로 말하면 말 그대로 ‘예배당에서 모인 것’을 말한 것이다. 영어에서 당회는 “Session"으로서 그 말의 의미는 ”sitting together" 즉, ‘함께 앉아있는 것’을 말한다. 헬라어로는 우리가 잘 아는 산헤드린(Synedin)이 당회의 뜻을 대신한다. syn(함께)과 hedrin(앉다)의 합성어이다. 헬라어의 의미 역시 ‘함께 앉아 있는 것’으로 풀이 될 수 있다. 쉽게 요약하면 당회의 정의는 교회에서 대표성을 띤 사람들이 어떤 목적을 갖고 협의점을 끌어내기 위해 함께 모여 앉아있는 것이다.
2) 당회의 기원
당회의 기원은 창세기에 잘 나타난다.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하나님의 회의인 성회가 있었다(창1:26). 세상을 창조하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어서 성부, 성자, 성령이 회의를 한 것이다. 시편 82:1절의 “하나님이 하나님의 회 가운에 서시며 재판장들 가운데서 판단하시되” 말씀에 분명히 하나님의 회의에 관한 언급이 있다. 이것이 구약 성경에 나오는 성회인 것이다. 그런 회의가 있었기에 성령이 창조의 전초전으로서 수면 위에 운행하여 창조를 준비하고 있었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게 된 것이다. 우리는 창세기 1:26절에서 하나님의 창조회의를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고 했던 것이다.
창조사역에 회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회의 기원은 하나님의 회의인 성회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회의인 성회는 성경에서 여러번 나타난다. 따라서 당회의 기원은 하나님의 성회에 그 기원이 있고 인간적인 기원에서는 구약시대 모세로 거슬러 올란간다. 모세가 하고자 하는 일이 너무 벅차자 그의 장인 이드로는 사람들을 대표로 뽑아서 일을 분담하라고 귀뜸을 했다.
그러자 모세는 70인의 장로를 세운다(민11:16-17). 이것이 대의정치의 시작이다. 이 70인의 장로제도는 보다 발전하여 나중에 로마식민지 시대에 산헤드린 공의회가 되는 것이다. 이 산헤드린은 이스라엘의 최고 기관으로서 국가의 대사 및 종교에 관한 일들을 결정하였다. 초대 기독교 역시 이 산헤드린의 제도를 그대로 본따서 장로제도를 따로 두고 교회의 교리적인 문제가 있을 경우, 지금의 장로급에 해당하는 교회의 각 대표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서 오늘날의 노회처럼 회의를 했던 것이다(사도행전 15장).
그것이 예루살렘 공의회이다. 이처럼 오래 전 부터 이미 대의정치가 구약과 신약의 시대를 통해서 실현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신약에 보면 지역이나 교회의 장로의 회에서 안수를 주는 사례가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디모데가 장로의 회에서 안수를 받는다(딤전4:14). 이러한 대의기관의 제도를 본따서 종교개혁 시대에 존칼빈이 제네바 교회를 개혁하면서 당회제도(consistory)를 만든다.
이것은 지금의 당회제도와는 조금 다르지만 일단 개신교의 기원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을 제도화한 사람이 스코틀랜트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이다. 그는 의회의 인준을 통해서 장로교를 최초로 만든 개혁자이다. 낙스는 칼빈의 교회정치 구조를 그대로 채택했던 것이다.
3) 당회의 기능: 영적기능과 정치적 기능
교회의 최고회의로서의 당회는 두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정치적인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기능이다. 정치적 기능으로서 당회는 교회의 법규인 내규를 정하기도 하는 입법의 기능도 있고, 비행교인의 징계절차를 심의하기도 하는 사법기관의 역할도 하며, 교회의 행정과 예산을 심의, 관장하는 행정기관의 역할을 한다. 영적인 기능으로서 당회는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지도를 하며, 예배와 관련된 성만찬 사역에 봉사를 하며, 교회집사들을 교육시키며 아프고 어려움에 처한 자를 심방하기도 하는 영적인 기능이 있다.
또한 목회자와 관련한 일에 있어서 목회자를 협조하기도 하고 때로 목회자의 비행이나 비상식적인 행위가 있을 때는 교인들의 영적 생활을 위하여 그를 견제하는 일을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당회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그것은 영적인 기능은 사라지고 정치적 기능만 남은 데 있다. 사실 당회원으로서 목회자를 대신하여 혹은 목회자 부재시, 성도들을 관리하고 돌보며 상담하고 심방하는 당회원이 몇이나 되는가? 현실적으로 아주 힘든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풀타임 목회자를 고용해서 모든 일을 다 감당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목회자는 영적인 리더자뿐 아니라 본의 아니게 정치적인 리더자의 기능까지 도맡아 하게되는 것이다. 목회자의 권한은 주로 영적인 기능에만 국한해야 하는데 정치적 기능까지 도맡게 되니 갈등을 유발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당회의 일랸의 문제는 기능상 정치적인 일과 영적인 일의 혼동속에서 오는 것이다. 목회자의 영적인 일에 대한 무지와 교회행정의 독주, 장로들의 행정능력의 결여와 지나친 목회간섭과 영적인 일의 태만에서 갈등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자의 정명사상 처럼 가르침을 위해 부름을 받은 장로는 이름 그대로 가르침과 심방 등 주로 영적인 일에 관심을 쏟고, 행정을 위한 치리 장로는 이름 그대로 행정을 위하는데 자기의 역할을 하면 어려움이 없는데 서로의 역할을 혼돈하고 자리를 찾지못하는데서 어려움이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서로의 역할 분담이 안되고 모두 영적인 기능보다 정치적인 기능을 선호할 때 갈등과 아픔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 기능을 선호할 때는 사단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율법적 당회가 되는 것이고 영적 기능을 선호할 때 하나님의 창조성과 의지를 반영하는 성회로서의 당회가 되는 것이다.
4) 당회의 속성: 율법적 당회와 성회로서의 당회
a. 율법적 당회
당회에서 가장 잘 일어나는 문제는 리더십, 즉 주도권에 관한 것이다. 목회자의 카리스마틱한 리더십의 결과로서 오는 곳으로, 이를 제동하고 제어하려는 장로들과 계속 연장하고 누리려는 목회자간의 줄다리기와 마찰이 손쉽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반대로 기득권을 쥔 장로들과 이것을 허물려는 목회자의 갈등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피해는 성도들에게 돌아간다.
이것은 영적 기능이 상실된 목회자와 당회원들의 에너지가 정치적 에너지로 화하면서 서로의 갈등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근거가 없는 장로와 목회자의 갈등, 장로간의 갈등은 없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분명히 어느 한쪽의 개인적 야심과 이기주의, 무지, 성급함, 잘못된 정치적 의도, 집요한 주장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거룩의 이름으로 가려질 따름이다. 앞에는 영성을 표방하지만 이면에는 정치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율법적 당회인 것이다. 회칠한 무덤처럼 안과 밖이 다른 것이다. 율법이 사단에게 이용당하듯이 율법적 당회 역시 사단에게 이용당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칼빈의 얘기대로 영적인 어머니로서의 교회, 성령의 기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인 당회, 하나님의 부름 받은 사역자로서의 목회자, 장로라는 거룩한 이름 뒤에 죄가 틈을 타서 그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든 거룩한 계명 뒤에서 사단이 역사하듯이(롬7:8) 성직자와 기름 부은 받은 사람들의 집단인 당회 뒤에서 사단이 역사를 하는 것이다.
b. 성회로서의 당회: 창조성과 이중대의성
1. 창조성
당회는 인간의 회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회의인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몸된 교회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 자신들의 대리자를 세워서 그의 몸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회의를 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회는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창조를 위해서 새로운 일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창조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흠집잡기나 싸움터가 되어서는 안되고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토론이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웃와 사회를 위해, 그리고 선교영역의 확장을 위해, 성경공부의 리더자 양육과, 수시로 변하는 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교회의 대응전략, 전산화된 교회 행정, 구역시스템 등에 대한 새로운 사역들이 계속 창조될 수 있도록 건건하고 합리적인 마인드를 갖고 토론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당회의 영적인 기능이며 이 영적인 기능은 창조성이외에 대의정치로서 승화될 수 있어야 한다.
2. 이중 대의성: 하나님의 대의와 성도들의 대의
당회는 대의정치로서 이중적인 기능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대의 정치와 민주적 대의정치의 속성을 갖고있는 것이다. 당회는 아래에서는 민주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이자 만인 제사장인 성도들의 의견을 대신하고 위로는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여 하나님의 의지를 대신하는 이중의 대의성을 띤 영적인 성회인 것이다. 교회사를 보면 하나님이 이단들을 막기위해서 공의회를 통하여 역사했던 것이다. 회의는 그만큼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는 모임인 것이다. 그래서 신중하고 분별있게 한님의 뜻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많은 교회의 당회들이 이런 이중성의 대의정치는 함몰한 채 자신의 생각만을 대의하는 봉건전제 정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즉 성도들과 하나님의 입장은 제쳐놓고 자기의 입장만을 말하거나 목회자를 포함한 상대방의 흠집내기로만 일관한 채, 총칼 없는 언어의 전쟁터로 변신하고 있다. 심지어는 당회가 열릴때마다 욕설과 고성이 오가서 성도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더 이상의 거룩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뜻은 마다하더래도 인간이 만들어 놓은 민주주의 상식의 정치, 대의의 정치 조차 거부하고 있다. 목회자는 당회장이라는 거룩의 이름으로 전제군주처럼 독선적 리더십과 비상식적인 결정을 하고 당회원들은 당회의 기본 기능과 역할의 무지로 인해 성도들의 의사는 반영도 하지 않고 자신들의 입장만 고집하여 당회장의 의사에 무조건 맹종을 하거나, 아니면 무조건 목회자의 발목을 잡는 대의정치의 부재속에 처해있다. 이것은 당회의 본질적 기능인 이중적 대의성을 간과하는 것이다.
이처럼 당회가 창조성과 이중적인 대의성을 무시하고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것이 중심이 되었을 때 교회의 퇴보와 분리, 갈등을 부추켜 결국 교회는 특정인 중심으로 전락하고 내분이 일어나 사단의 의도대로 베드로파, 아볼로파, 바울파로 나뉘게 되어 공중분해되거나 사색당파로 찌든 이씨조선의 말년처럼 되는 것이다.
창조성과 대의성이 결여된 당회는 영적으로 무지하게 되어 교회성장은 멈춤 상태에 있고 전통주의에 빠져서 가족교회로 되거나 교회내 기득권을 가진 측근들 위주로의 교회로 되어, 더 이상의 개혁이나 발전은 없고 어제의 교회가 오늘의 교회로 되고, 오늘의 교회가 그대로 변함없이 내일의 교회로 퇴보하여 타이타닉 교회가 되는 것이다. 즉 미래가 없는 교회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머리인 당회의 기능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5) 당회의 힘의 주체: 개인의 power 와 단체의 power
우리가 흔히 장로교라고 말했을 때는 성도들의 대표성을 띤 장로가 정치를 하는 교단이다. 정치구조는 대의정치로서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같은 기능이 있다. 당회원들은 교회의 국회의원인 것이다. 교회의 의회로서의 당회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재정과 행정, 치리, 인사 등과 관련한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한국교회는 당회보다 당회장이 막강한 권한을 갖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것은 누가 그 교회의 선입주와, 교회의 공헌도에 따라 좌지우지 된다.
그 교회를 개척했거나 성장시킨 목회자는 자동적으로 교회에서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여 독주를 하는 경우가 더러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당회 갈등요인 중의 하나는 힘있는 당회장이 독주를 하거나 자신의 임의대로 교회를 끌고 가고자 했을 때 당회원들과 충돌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와 서양교회가 다른 것이 하나있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경우는 개인의 권한(personal power)이 강한데 비해 서양교회는 단체의 권한( cooperate power)이 강하다. 그래서 서양교회(미국교회)의 당회장은 당회시 한국교회의 당회장 처럼 말 그래도 moderator이지 무엇을 결정하거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교회 렌트 하나 결정할 힘이 없다. 단체의 힘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람 잘날 없는 교회를 보면 특정 개인의 권한이 강하고 불투명하며 밀실에서 은밀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반면 시스템이 견고하고 건강한 교회를 보면 사적인 power 보다 단체의 power가 영향력을 행사하여, 투명하고 정직하고 양심적인 일처리를 한다. 이것은 일반 정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전제군주시대는 개인의 power가 강하지만 민주주의 시대에서는 민이 주가 되는 단체의 power가 강하다.
그래서 건전한 당회를 이끌기 위해서는 특정 개인의 power보다는 단체의 power로 힘의 이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회가 power가 있다고 해서 자신들을 선택해준 민의, 즉 교인들의 의사를 져버리고 당회원들끼리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면 정치적이거나 법적으로 하자가 없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이스라엘의 정치집단인 산헤드린 처럼 타락한 정치적 당회로 전락하는 것이다.
6) 당회의 모델: 산헤드린 공의회와 예루살렘 회의
이러한 당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당회 위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는 곳에 창조의 역사가 있는 법이다. 당회를 시작하기 전에 일주일전부터 기도를 하며 인간의 뜻이 스며들지 않고 마가 다락방에 임한 성령 처럼 그 당회에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도록 영적으로 준비를 해야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목소리만 범람을 하고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 사고나 편협적인 생각들만 판을 쳐서 예수를 처형하기로 결정한 ‘산헤드린 공의회’ 처럼 되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연구하고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그들이 합의해서 내리는 결정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죽이라는 비신앙적 행위이다. 이것은 당회위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창조성이 사라지고 파멸만 남게되는 대표적인 예인 것이다. 그 당회 위에 마가 다락방의 성령이 내리지 않으니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결정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당회는 있되 성령이 없는 당회가 많은 것이다.
성령이 역사하는 당회는 무언가 다르다. 성령이 임하는 당회의 예를 들어보자.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회의(헬라어로는 똑같이 산헤드린)는 더 이상 율법에서 요구하는 할례나 정결례, 특정한 날지키기를 요구하지 않고 이방인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가결을 한다. 더 이상 형식과 기존 전통에 치우치지 않고 배타성을 뛰어넘어 보편성을 띠게되는 성령이 역사하는 결정이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서 하나님의 복음은 땅끝까지 퍼져나가 한반도까지 이르게 되었다. 당시에 예루살렘 당회가 유대 배타주의에 젖어서 성령의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영원히 복음을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성령의 결정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리라”는 말씀대로 무한대로 역사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성령이 운행하는 당회이다.
성령이 역사하는 당회는 복음이 땅끝까지 퍼지는데 앞장을 서지만 성령이 역사하지를 않고 인간의 영이 역사하는 당회는 정치적인 성향을 강하게 띠게되어 복음증거나 봉사, 선교보다는 주방사역과 인간적인 교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러한 교회의 대부분의 특징은 목회자를 포함한 특정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적인 power가 강하게 나타나 바람잘 날 없어서 겉으로는 교회의 모습을 띠지만 안으로는 인위적인 냄새가 가득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선교는 하되 불렵화음이 많으며 식탁교제는 하되 음식에만 관심을 갖고 서로에 대한 소문만 무성하고 영적인 교제가 증발한 교회이다.
성경공부와 예배, 찬양은 있되 감격과 변화와 간증이 없다. 내실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산헤드린(당회)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산헤드린이 아니다. 예루살렘 공의회 처럼 영적인 산헤드린이 있고 예수를 죽이는데 앞장선 정치적인 산헤드린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현재의 당회가 어떤 특징의 당회인지 구분을 할 수가 있어야 한다. 산헤드린 당회인지, 예루살렘당회인지 말이다.
구시대와 전통에 치우쳐 개혁의 열망 없이 현재의 주어진 상태를 만족하고, 창조성이 종식되며 교회내 특정그룹이나 특정 당회원의 개인적인 power가 강하고 성도들의 의사와 하나님의 의사를 무시하여 이중적인 대의성이 증발한 인간의 영이 역사하는 정치적인 산헤드린인지, 아니면 예루살렘 당회처럼 개인보다 공익을 앞세우고, 보다 사적인 교제나 인위적 활동보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영적인 일에 치우치고, 특정목사나 개인보다는 단체의 power가 앞서고, 성도들의 의사와 하나님의 의지를 반영하는 이중대의성에 충실한 성령이 역사하는 영적인 당회 인지 점검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예수를 죽이는 산헤드린 당회를 선택해야할 지, 예수를 살리는 예루살렘당회를 선택해야할 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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