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사익이 죽어야 공익이 산다

  • 로앤처치
  • 입력 2013.03.08 13:56
  • 댓글 0
  • 글자크기설정

  • 목사의 사익, 교단의 사익.....예수는 철두철미 공익적인 분
개신교는 공익의 종교
 
개신교는 공익의 종교이다. 예수의 삶은 사익을 위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하나님나라의 실현이라는 공익을 위한 것이었다. 예수의 사역을 보면 모두 개인의 축복만을 위한 것은 없고, 더불어 축복을 받는 공동체의 축복이었다. 오병이어가 예수의 손에 놓이게 되니 신비한 떡으로 변해 수많은 사람을 먹이는 공익의 떡이 되었다. 사익의 떡이 공익의 떡이 된 것이다. 가나 혼인잔치에서도 돌항아리의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수많은 사람을 마시게 하여 공익을 위한 기적을 베푸셨다. 사익의 물이 공익의 포도주로 변하였다. 
 
성서의 공익적인 사람들
 
수가성 우물가 여인의 더러운 행실의 삶이 예수의 의해 변화되니 수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야가 나타났다고 복음을 전하는 공익의 삶이 되었다. 세리 삭개오가 예수를 만나니 그의 사익의 재산 절반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공익의 재산이 되었다.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인 사도바울의 유대적 사익적인 삶이 다메섹에서 예수의 빛을 보고 공익적인 삶으로 변했다. 자신은 가난한 자 같으나 풍요로운 자라고 했다. 그는 예루살렘의 기근을 위하여 로마교회에 헌금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국교회의 목사들 중에 문원순목사는 예수를 만나 노숙자들들 위한 공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익적인 삶
 
그러나 예수를 배반했거나 부인한 사람은 모두 사익을 위한 삶을 살았다. 가룟유다가 사익을 위해 살았고, 베드로가 사익을 위해 예수를 부인했고, 본디오 빌라도가 사익을 위해 예수가 죄가 없는 줄 알면서도 예수를 죽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사익을 위해 속이다가 죽어버렸다.  
 
오늘날 개신교의 문제는 지나치게 사익을 추구하는데 있다. 담임목사가 사익을 추구하고, 원로가 사익을 좇고, 당회가 사익에 편승하고, 교파가 사익을 우선하기 때문에 개신교는 공익을 추구하는 예수의 정신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래서 점점 사회의 주변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교회의 부채는 대부분이 교회건물로 인한 빚 때문이다. 공익이나 사회복지를 위한 빚은 거의 없다. 모두 교회건물과 부동산으로 인한 교회 사익적인 빚이다. 대부분의 건축을 한 교회는 아예 예수를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건물과 은행을 모시고 산다. 교회마다 공익적인 사역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다. 
 
목사와 교회의 사익
 
교인 1,000여명만 되어도 50억- 100억자리 건물을 짓는 것이 능사이다. 매달 수천만원이 은행이자로 빠져나간다. 결국 교회는 건물과 은행의 이자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이처럼 교회가 사익을 추구하다 보니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세인들로부터 관심을 잃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같은 교회 옆에 또 있고 줄을 서고 있다. 복음보다는 생계유지에 빠져 사익을 위한 것이 되어 버렸다. 목사의 생계형 교회 천지이다.  대형교회는 교회사익에 몰두한 나머지 대형버스를 돌리기도 하고, 지나친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모두 망국적인 사익병이다.
 
세습은 사익에 편승한 것
 
교회 세습 역시 공익이 아니라 사익에 편승한 것이다. 아버지의 권한을 아들에게까지 미치고자 하는 사익적인 것이다. 노회의 재판도 결국 목사의 사익을 위한 재판이다. 교회라는 공익이 아니라 목사의 사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마녀사냥재판을 하는 것이다. 총회장이 되면 교단이라는 공익에 우선하기 보다는 개인 명예라는 사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돈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사익적인 관심으로 임원들이나 각 부서에 자기 사람 앉히기를 좋아한다. 결국 공익적인 명분을 갖고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신총협 역시 학연이라는 사익을 중시한다.  교단이 모두 사익에 미쳐있는 것이다.  
           
목사가 다수의 신도들이 싫어하는데도 교회재산에 탐을 내고 교회에 붙어 있으려 하는 것은 지나친 목사의 사익 때문이다. 결국 교회부동산에 대한 관심이다. 교단의 재판도 교회나 교단이라는 공익을 우선시 하는 것보다 목사를 위주로 한 사익을 우선시 하고 있다. 이처럼 사익을 중시하는 것은 예수의 정신에 배반하는 것으로 망국적인 병이다. 한기총이 이제까지 문제되었던 것은 한국교회의 전체적인 연합보다는 의장개인의 사익에만 관심했기 때문이다. 중세교회가 망한 것은 지나친 사제의 사익 때문이다.
 
치리회장, 사익에 편승
 
노회장이나 총회장 역시 개인의 사익적인 명예에만 관심을 두면 노회나 총회가 시간이 지나도 발전하지 못하고 맨날 그 타령이다. 그들은 공익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총회장이 되면 관행은 먼저 미국을 방문하고, 호주, 일본, 유럽을 방문하는 것이 예사이다. 총회장이 되면 이렇게 합법적으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공익보다 사익에 관심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익을 추구하는 지도자는 선거할 때 금권선거를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금전을 푼다는 것은 예수의 공익적인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성경에 십일조는 가난한 백성을 위해서 사용되는 공익정신이 담겨있다. 그러나 현재는 목사의 자녀교육비, 사택비 등으로 인해 200여명의 교인만 있어도 목사의 연봉이 5,000만원이 넘는 경우가 있다. 십일조와 교인의 헌금이 목사의 생활비라는 사익으로 많이 쓰여지고 있다. 교인 1,000여명만 되어도 이것 저 것 다 합쳐서 연봉 6,000-7,000만원 이상 이다. 교인의 헌금이 목사의 사익, 은행의 사익, 교회건물의 사익으로 쓰여지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기도를 한다.
 
한경직 vs 조용기
 
한경직목사가 조용기 목사보다 위대한 것은 사익보다 공익을 추구한 데 있다. 한경직목사는 공익을 위해 평생을 산 사람이다. 한편 조용기 목사는 사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곽선희 목사나 김지철목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들 모두 사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삼환목사가 위대한 것은 자신에게 들어온 모든 수십억의 사례비를 사회에 공헌하여 공익적인 삶을 산 것이다. 이런 면에서 안철수도 공익을 위해 산 공익적인 사람이다.  
 
사익을 추구한 목사들
 
강북제일교회의 문제는 지나치게 황형택이 사익을 추구한 데 있다. 광성교회의 문제도 원로목사패밀리가 지나치게 사익을 추구한 것이다. 신일교회의 장로들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라는 공동체의 유익보다 장로들 사익을 중시한데 문제가 있다. 이들은 모두 공익을 추구하는 예수의 정신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이단감별사들의 문제는 한국교회의 교리수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 자신들의 이단권력이라는 사익을 위하여 이단을 정죄한 것이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목사의 사익, 장로의 사익, 교회의 사익, 교단의 사익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있다. 한국에서의 WCC개회를 두고 하나되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것도 세계교회일치라는 공익을 추구하는 본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때문이다. WCC를 주도하는 명성교회는 이제까지 공익만 추구한 교회였다. 김삼환목사 역시 사익대신 공익을 추구한 목사였다. 그의 공익적인 삶이 어디까지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공익을 위하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것
 
김삼환목사가 마지막까지 공익을 추구하는 목사의 삶을 산다면 그는 한경직목사이상 존경을 받는 삶이 될 것이다.  명성교회는 공익을 추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김삼환목사는 제 2의 한경직목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남을 위하여 공익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성서의 인물, 이삭, 모세, 여호수아, 요셉, 다윗, 다니엘, 바울, 세례요한은 공익을 위하여 산 사람들이다. 공익을 위하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일이다. 그러나 성서는 죽을려고 하는 자는 살겠고,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기독교는 죽음으로써 사는 부활의 종교이다. 교회가 죽음으로써 희생하는 자세가 없다면 부활은 없을 것이고, 사회로부터 환대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 개신교는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점점 죽어가는 것이다. 구한말의 개신교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근대교육기관과 근대병원을 세웠고 독립운동에 앞장섰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의 실천을 보고 개신교에 귀의했다. 그러나 개신교는 신이아니라 독이 되어 버렸다. 개독교가 된 것이다. 이는 목사의 사익, 교회의 사익 때문이다. 사랑의 교회도 박사학위를 쉽게 받으려는 오정현목사의 사익때문에 요동하는 것이고, 순복음, 제자, 분당중앙, 강북제일, 신일, 초대, 소망, 광성교회도 모두 목사의 사익 때문에  교회가 요동치는 것이다.
 
교인들은 목사의 사익을 하나님의 공익이라고 착각
 
교인들은 목사의 사익을 하나님의 공익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신예찬에 나오는 어리석은 신이 교인들의 머리를  감쌌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늘날 개신교가 몰락하는 것은 공익보다 사익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광성교회도 목사들의 사익때문에 몰락하는 것이다. 예장통합의 연금재단도 목사들의 사익 때문에 손해가 엄청나게 발생하는 것이다. 신학교는 교수들은 학교의 상아탑에서 벗어나 사회와 세계를 위한 공익에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익을 추구하는 교수는 세계적인 학문 연구 노력하지도 않고 보직에 목을 매달고 있다.  
 
이처럼 신학교 교수나 교단이나 개신교, 교회는 '하나님나라 세우기'라는 공익적 시각이 없기 때문에 사익에 연연하는 것이다. 총회임원이나 노회 임원들도 교회분쟁시 교인들이 신음해도 화합에 관심이 없다.  잘못하다가는 흙탕물이 자신들에게 튀기기 때문이다. 모두 사익적인 삶을 사는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나 사도바울의 삶은 공익이었다.  예수가 가르쳐준 공익적인 삶을 상실했기 때문에 개신교가 사익을 추구하다 보니 개독교가 되는 것이다. 
 
개신교가 사는 길은 공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목사들은 연봉을 낮추고, 교회는 부채를 쌓지 말아야하고, 교수들은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신학이 사회저변부까지 뻗칠 수 있도록 해야하고, 지나칠정도로 현실성이 없는 교육은 삼가야 할 것이고, 학교에서만 폼잡을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아티클에 글을 기고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이상 교수, 목사, 총회임원들. 교회연합회는 사익적인 삶을 배제하고 공익적인 삶을 우선시 할 때 개신교가 살아날 수가 있는 것이다.
   


ⓒ 통합기독공보 & www.lawnchurch.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전체댓글 0

추천뉴스

  • 예장합동 목회자 수급 불균형 우려… 평신도 신학 교육 대안 주목
  • 종교개혁의 정신, 오늘의 한국교회는 개혁되고 있는가
  • GMS 2027 세계선교대회 슬로건, ‘교회여 다시 열방으로’
  • K팝 성공에서 한국교회 다음세대 사역의 길 찾는다
  • 예장합동 서울강남노회 제102회 정기회 개최…21당회서 23당회로 확대
  • 선교의 주체를 넓혀라…교회는 모두 선교사다
  • 조승호 GMS 신임 이사장 “모든 성도가 선교에 참여하는 시대 열겠다”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사익이 죽어야 공익이 산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