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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김삼환, 안병무야 말로 진정한 한류신학자들

  • 법과 교회
  • 입력 2014.05.0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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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은 한국정서를 반영한 산 자의 신학 필요
조용기, 김삼환, 안병무는 한국적 정서를 목회와 신학으로 옮겨 한국목회와 신학을 세계화시킨  진정한 한류파 신학자들이다. 미국 신학교 도서관에 가면 조용기, 안병무교수의 영어로 번역된 책 밖에 없다. 이미 그들은 춤과 노래가 아닌 목회와 신학으로 한국의 기독교를 세계에 전파한 진정한 한류의 창조자들이다. 김삼환목사의 행위신학은 이디오피아에 대학병원을 세웠다. 그는 이디오피아의 영웅이다. 현대판 슈바이처이다. 이디오피아에게 중요한 것은 신학이 아니라 그들의 정서와 사회를 반영해 줄 병원이었다. 조용기 목사는 삼박자 신학을 세계화시켰다. 안병무교수는 민중신학을 세계화시켰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한류신학자들이었다. 이들 모두는 한국의 정서를 반영해서 신학화 한 것이다. 이들의 신학은 이단감별사나 근본주의자들처럼 죽이는 신학이 아니라 살리는 신학이었다.   

한국의 신학은 죽은 세월호의 신학

이들의 설교나 신학에 바르트, 몰트만, 루터, 칼빈은 없었다. 오직 예수 뿐이었다. 안병무는 결코 자유주의 신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서구의 정치신학의 틀갖고서 한국민중의 애환과 삶을 신학화 하고 민중들을 살리기에 안간 힘을 쓴 사람이다. 그러나 한국의 이단신학, 교단정치신학, 정죄주의 신학은 서구의 죽은 신학의 틀 갖고서 남을 죽이는데 앞장 선 신학이다. 이제 한국의 신학자들은 죽은 자들의 신학의 틀갖고 우려먹을 것이 아니라 산 자들을 위한 산 자의 신학을 만들어 내어 사람을 살려야한다. 더는 죽은 세월호의 신학이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기를 위해 남을 죽이는 세월호의 신학은 더는 의미없다.         

이제 서구신학이 한계를 느끼고 안병무에 이어 한국신학이 출현할 때가 되었다. 근원적으로 한국적 기독교와 서구적 기독교는 다르다. 서구가 아무리 부패했다고손 치더라도 우리나라처럼 용역을 들이대면서까지 성전을 빼앗는 작업은 하지 않는다. 미국교회의 분쟁이 있다한들, 주로 법정싸움이지 물리력 싸움은 거의 없다. 유독 우리나라만 사찰이든 교회이든 용역을 들이면서까지 재산싸움을 하고 있다. 우리는 칼빈, 루터, 바르트, 무디, 미국교회를 논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식 기독교는 루터와 칼빈, 바르트, 미국선교사들이 생각한 종교와는 전혀 다른 기독교를 잉태하고 있다.

우리에는 칼빈, 루터의 피가 없고 배달민족의 피가 흘러

우리는 신학적 개념 개념정리도 안된 상태에서 루터, 칼빈,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아타나시우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도로트신앙고백, 바르멘 선언 등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모두 낯선 용어이며 명칭이며, 신조들이다. 우리도 아직 개념화되었거나 체득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들이 배운 용어나 교리에 조금 벗어나면 이단, 삼단 정죄한다. 신론, 성령론, 삼위일체론, 귀신론 등을 아무리 배우고 익힌다한들, 우리에게는 칼빈이나 루터, 바르트, 메이첸, 마펫의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배달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 교수이든 할머니이든 떠나서 대한민국 신자들은 대부분 부흥회성 신앙이나 오순절 신앙에 익숙해 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뜨거운 속성에 맞기 때문이다.

오순절은 낙천적이고 신비적이고, 샤머니즘적인 나라에 발전해 있다. 아프리가는 오순절 기독교가 가장 적절하게 개신교의 뿌리를 내리고있다. 이는 역동적인 아프리카 국민성에 오순절 운동이 맞기 때문이다. 오순절은 남미에서도 뿌리를 잘 내리고 있다. 낙천적인 남미 사람들에게 잘 어울린다. 한국의 조용기는 대표적인 오순절 목사이고, 김홍도, 신현균, 이천석, 오관석, 강달희 등은 모두 한국의 대표적인 오순절스타일의 목사들이다. 현재 예장통합에서도 대표적인 오순절 목사는 김삼환, 나겸일, 민경설, 지용수 목사 등 이다. 이들의 설교에는 루터나 칼빈, 바르트의 신학을 전혀 찾을 수 없다. 

김삼환, 나겸일, 민경설목사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정서 반영

김삼환목사는 전형적인 한국식 설교이다. 삼위일체, 기독록, 성령론, 신조 등 학문적인 용어나 개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은혜, 체험, 기복, 유머 이다. 그래도 장성들, 학자들, 대학 총장들, 국회의원, 판검사 등 수백명이 명성교회에 참여한다. 김삼환, 나겸일, 지용수목사는 우리나라사람들의 정서에 맞게 설교하기 때문에 이들의 설교는 늘 구수한 면이 있다. 이들은 기적과 신비, 기복, 은사의 영적인 면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한국인은 아시아의 정서가 있다. 분석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구인들은 법인단체를 중시하지만 한국인들은 법과 상관없은 두레공동체를 중시한다.   

김기동은 한민족의 정서와 만중의 삶을 반영한 신학자...서구의 논리로 판단해서는 안돼

김기동목사에 대해서도 이단, 삼단운운하고 있지만 성락교회도 약 6만명을 헤아린다. 개신교에서 보는 김기동목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죽은 자의 혼이 귀신이 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의 관습과 유사하다. 국어사전에도 귀신은 죽은 자의 넋으로 되어있다. 우리나라에서 귀신의 의미는 전설따라 삼천리 에서 보듯이 죽은 자의 혼이거나 넋이다. 김기동목사의 귀신론은 기독교교리의 적합성은 두 번째 하더라도 전형적인 민중의 삶속에 스며있는 이론이다. 이처럼 김삼환, 조용기, 지용수, 김기동 등이 소위 성공한 이유는 민중들의 삶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한국적 신앙은 오순절 신앙

우리나라는 어린아이부터 학자에 이르기까지 말할 것도 없이 모두 오순절적인 성향과 기복신앙적 성향, 영적인 성향이 자리잡고 있다. 배달민족의 피가 한국인에게 흐르고있기 때문이다. 교계는 칼빈신학이나 장로교신학이나 제도에 사로잡혀있는 것 보다 지연, 학연, 보직, 권위에 사로잡혀 있다. 신학은 삶이고 문화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든지 서구의 신학이 체득화되어 있지 않다. 단지 외국에서 배워와서 흉내만 낼 뿐이다. 국가와 교회와 관계도 한국에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적 교회와 한국적 국가와의 관계는 서구와 전혀 다르다. 우리는 서구를 흉내만 낼 뿐이다. 

모든게 서구의 흉내와 모방

교회재산도 서구는 모두 교단에 신탁을 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계는 증여나 신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명의 신탁이다. 신탁도 흉내내고 있다. 명의 신탁은 엄밀한 의미에서 부동산실명제법 위반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당 뺏기 전쟁을 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신학이나 신앙은 아시아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아시아인들이 서구의 세계관 갖고서 교리를 분석력있게 논의하여 이단, 삼단으로 정죄하는 것도 우수운 일이다. 자신들의 신앙의 잣대에 맞지 않는다고 힘을 갖고서 이단, 삼단논의하는 것 자체도 비상식적이다. 서구와 달리 남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삼환목사에게서 칼빈식 설교나 바르트식 설교를 기대할 수 없다. 김삼환목사에게서는 은혜, 축복, 감사, 유머 등만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도 학자들이 하지 못하는 이디오피아에 대형병원까지 세우고있다. 조용기목사에게서 웨슬리, 무디, 칼빈, 루터를 기대할 수 없다. 삼박자 축복신앙, 치유, 범사축복 등만을 기대해야 한다.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만들었다. 손양원, 주기철목사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정신, 애국의 정신, 일사각오의 정신 등이다. 그들에게서 은혜와 기복, 축복은 기대할 수 없다. 주기철, 손양원, 길선주, 조용기, 김삼환, 한경직의 위대한 점은 교리로 목회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고통스런 정서와 시대상을 기독교정신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결국 한경직목사는 템플턴상을 수상받기도 하였다. 이들의 신학이야말로 진정한 한류였다. 

민족적 설교가들

구한말 설교가들은 애국이 필요할 때 애국적 설교를 했고, 6.25이후 설교가들은 복이 필요할 때 복설교를 했고, 병들었을 때  치유해주었고, 귀신들렸을 때 쫏아내 주었고, 배고플 때 빵설교를 했고, 도움과 봉사가 필요할 헌신설교를 했다. 그들은 봉사와 도움의 설교를 하면서 손수 행동가짐으로 보였다. 이용도목사는 예수처럼 33살에 세상을 뜬 목사였다.

그는 집에 거지는 다 끌어들여서 쌀을 나눠주었고 정작 자신의 재산까지 팔아 이용도를 신비주의자로 몰아부친 송창근목사가 미국에 유학을 갈 때 학비를 대 주기도 하였다. 그는 신비주의자였지만 진정 예수를 위해 산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신비주의는 아니었지만 예수보다는 교단과 자신을 위해 산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입에 회자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민족정서를 반영해서 한국의 기독교지도자급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길선주, 주기철, 한석진, 이용도, 김익두, 이성봉, 조용기, 신현균, 한경직, 김삼환, 이천석, 김창인(합동, 통합 모두)목사 등은 민족의 심장과 끓어오르는 가슴을 읽은 사람들이다.

이들에게서 근본주의나 자유주의, 중도파 등 교리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단순하면서도 민족의 혼과 정신, 관습을 읽어낸 사람들이다. 예장통합 김창인목사는 20분 3대지 설교로 광성교회를 한 때 1만명 이상 크게 성장시키기도 했다. 마리아월경잉태론자 최삼경의 근본주의적인 잣대로 보면 모두 이단일수도 있다. 김삼환, 하용조, 김지철 목사 등 모두 예장통합교단의 기라성 같은 사람들로서 김기동목사의 귀신론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실제로 김삼환목사의 설교에도 귀신에 대한 것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최삼경은 감히 김삼환목사를 이단이라고 하지 못한다. 이단이라고 판단하기에는 김삼환목사가 차지하는 영향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삼환목사를 이단이라고 한들, 아무도 이를 믿지 않으려하기 때문이다. 최삼경은 하용조목사도 이단이라고 하지 못했다. 이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용기목사도 이단으로 했다가는 결국 번복되고 말았다. 이단에 의한 희생자는 대부분 군소교단에 속한 대형교회 목사들이다. 이재록, 김기동, 박윤식, 예태해, 김계화, 윤석전, 박철수, 이인강 등이다. 이들에게서 공통적인 것은 한국적 정서와 민중들의 애환을 많이 반영한 사람들이다. 아무리 김계화를 비난한다고 하더라도 김계화를 통해서 많은 암환자들이 고침을 받은 것이다. 김기동과 이재록을 이단이라고 한들 그들을 통해서 수만명의 사람들이 고침을 받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갔던 것이다. 이인강을 비난한다고 한들 오 갈데 없는 수십명의 사람들을 모두 교회에 수용하여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있다.  

박윤식목사를 이단으로 조작하여 비난을 한다고 한들 수많은 정치인, 연예인, 군인들이 예수를 믿게되었다. 남진, 패티김, 최진희 등의 신앙적인 삶은 박윤식목사 덕분이다. 한국정서를 갖고 목회했던 이들은 가방끈과 교리의 끈이 짧은 이단감별사들의 어설픈 서구신학의 잣대에 의해 희생되었던 것이다. 이단감별사들과 예장통합 이대위원들의 공통적 특징은 가방끈이 짧은 것이다. 정상적으로 문화신학, 아시아신학, 교리신학을 공부한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의학을 정상적으로 공부하지않은 사람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선무당이나 돌팔이가 되어 사람을 잡는 것이다.

이단감별사들이나 예장통합 이대위원들은 가방끈이 짧다 보니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한 목회를 어설픈 서구신학의 칼로 짤라 버린 것이다. 그들은 서구신학의 앵무새들이었다. 서구신학을 한국정서에 맞게 재해석 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한국의 송천성이 없었던 것이다.
     
서구의 교리가 아니라 한국적 정서 반영한 목회자가 성공
     
우리나라에서 목회에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서구의 교리적 스타일이나 칼빈식 목회, 루터식 목회, 무디식 목회, 빌리그래함식 목회, 장로교식 목회를 해서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기도하는 사람, 40일 금식기도해서 능력 받은 사람, 폐병에서 살아난 사람, 불치병에서 살아난 목사 등이 전형적인 한국인의 열심으로 성공한 것이다. 그들 모두 공통적인 것은 한국인의 심성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었던 사람들이다.  
 
서구는 새벽기도와 철야기도, 금식기도가 거의 없다. 새벽기도는 길선주목사가 차력사를 하면서 늘 새벽에 일어나 도를 닦는 것이 습관해 되어 교회에 이식한 것이다. 새벽에 정한수를 떠놓고 아들의 앞날을 위해 비는 어머니가 하던 방식이다. 서구는 새벽기도, 철야기도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기독교는 기복성, 열심, 희생, 금식, 부흥회, 안수기도, 복음찬양 등이 주를 이룬다. 그러므로 군소교단에 있는 김기동, 이재록, 박윤식, 이초석, 박철수 등은 어설픈 서구의 영성이나 교리적인 잣대를 갖고 보면 이단으로 낙인 찍히게 되어있다. 

그러나 한국인의 영성과 심성, 정신, 귀신론, 열심론, 기복성, 샤머니즘성으로 보면 전혀 이단이 아닐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단은 같은 현상이라도 대형교단에 속한 목사는 안되고, 군소교단에 속한 목사들이 이단으로 낙인 찍히는 것이다. 이단감별사들이나 정죄자들은 자신들도 체득화되지 않은 서구의 교리나 신조, 신학의 안경을 쓰고서 남들이 하는 한국적 영성과 심성, 정신, 기복, 샤머니즘적인 요소는 모두 이단으로 몰아부친다.

최삼경도 서구의 삼위일체 이해못해

서방의 삼위일체론도 이제는 몰트만 이후 조금씩 정교회의 사회적 삼위일체론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처럼  서구의 신학도 변해가고 있고 우리는 다시 이러한 서구의 신학에 춤을 추어야 하는 것이다. 최삼경은 삼위일체론은 이해하기 어려운 귀신같은 이론이라고 말하기 까지 한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셋인데 왜 하나라고 하는가? 이는 전형적인 동양식 사고이다. 이러는 의미에서 최삼경도 아시아인인 것이다. 

동양적 사고방식은 셋이 하나가 되는 삼위일체라는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제 대형교단이 추구하는 신앙양식과 조금 다르더라도 한국적 문화의 옷을 입고 그들의 신앙양식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주기철목사도 서구의 눈 갖고 이해하기 어렵고, 손양원목사도 서구의 교리적인 눈갖고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고, 특히 이천석목사도 서구 기독교의 교리나 윤리적인 잣대 갖고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많이 있다.

조용기, 김삼환, 지용수목사에 대해서도 교리적인 기준이나 신학적인 기준을 갖고 그들을 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은 서구신학이 추구하지 못하는 성경의 자체적인 해석으로 말미암아 한민족의 정서에 대해 호소하기 때문이다. 한민족의 애환과 한, 정서는 서구신학이 해석할 수 없는 것들이다. 정장복교수가 아무리 설교학시간에 테크닉을 가르쳐주어도 김삼환, 곽선희, 지용수, 조용기, 김창인(예장통합), 이동원목사 만큼 설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설교는 서구신학의 틀이나 테크닉이 아니라 신도들의 정서를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설교가들의 단점은 혼이 들어가 있지않고 어설픈 신학과 마아케팅의 잣대로 미국식의 성장주의 설교를 모방하고 있다. 이러한 설교는 황형택과 오정현에게서 잘 나타난다. 차세대 대형교회 목사들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거나 학문 모방만 하고와서 어설픈 미국식의 성장설교를 흉내내는 것이다. 한민족의 정서와 혼이 담긴 설교를 하지 못한다. 물론 자본주의시대는 자본주의식의 설교가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주의설교에서 멀어져있다. 복음주의는자본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타락한 자본주의 시대상의 반영 이다.    

시대와 사회를 반영한 설교에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메스를 가하는 한, 그들은 본회퍼의 눈으로 보았을 때 다음날 이단이거나 값싼 신학적 설교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루터시대의 사회상을 드러냈고,  칼빈은 종교개혁시대 당시의 부패한 사회상을 반영했고, 바르트는 제2차 세계대전의 상황을 대변했고, 주기철, 손양원, 이용도, 김익두 목사는 구한말을 반영했고, 한경직, 이성봉 목사는 6.25 전후의 삶을 반영했고, 조용기, 이천석, 신현균 목사는 보릿고개를 반영했고, 김삼환 목사는 80년대 새벽종의 시대를 반영했다. 그들은 민중들의 정서를 노래했다.

영등포에서 가난하고 병원에 갈 돈도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김기동, 조용기, 이재록목사는 모두 치유를 통해 민중들의 질고를 반영했다. 우상숭배하지 않겠다고 전세계에서 못판 위를 걸어간 장로교목사는 아무도 없었다. 이는 우상숭배라는 교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일제에 대한 민족의 굴욕을 보이지 않기 위한 당시의 한국적 삶과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다. 자기 아들을 죽인 자들을 아들로 삼는 장로교 목사는 전 세계에서 없었다. 좌우이념이 투철한 사회에서 좌우이념의 장벽을 헐기위해 민족이 하나 되기 위한 의도로 공산당을 아들로 삼은 것이다. 시대의 산물이었다.

한국적 특유의 목사들...김기동은 한국정서 반영

예수처럼 공생애 3년을 하고 죽은 감리교 목사도 세계에 없었다. 오늘날 기독교 흐름의 물결을 이은 목사들은 대부분이 교리적 지도자이거나 신학적인 지도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민족의 영성, 삶, 정신, 고통, 질병치유, 축사, 기복, 희망을 심어준 사람들이었다. 동네마다 귀신이 없는 데는 없었다. 김기동은 귀신을 쫏아줌으로서 열심히 노동하게끔하여 가난을 없애고 질병을 치유하였다. 한국사람들은 누구나 귀신과 친숙해 져있다. 전설따라 삼천리는 모두 귀신이야기이다. 최삼경의 근본주의 잣대로 놓고 보면 최삼경을 제외하고 모두 이단이 될 것이다. 최삼경은 지금까지 충분히 소화되지 않은 어설픈 서구의 교리신학의  잣대를 갖고 아시아인들의 심성을 이단으로 매도하였다. 더는 앞으로 서구의 교리의 잣대를 갖고서 약자들이나 힘없는 자들에 대해 이단이라고 명명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인들의 독특한 영성

한국인은 세계의 개신교에서 갖고 있지 않은 독특한 한국인의 영성을 갖고 있다. 샤머니즘, 민족주의, 귀신론, 기복신앙, 도사상 등의 토대 하에 서구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의 신학옷이 걸쳐 있다. 서구의 교리적 신학의 틀로서 해석될 수 없는 한국인의 정서가 있다. 감리교에도 장로가 있고 장로교에도 권사가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한국적 감리교, 한국적 장로교이다. 심지어는 순복음이나 침례교에도 장로가 있다. 한국적 순복음, 한국적 침례교회이다. 명의 신탁도 한국적 신탁이다. 아무리 신탁을 한다한들, 종중 땅 개념에서 온 총유의 개념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한국적 토지의 공동소유형태 이다. 땅의 소유형태도 한국적 공동소유형태, 교단에의 명의 신탁도 한국적 신탁, 교단과 교회를 별개로 하는 것도 한국적 법원의 판단이다.   

이단 놀음은 그쳐야 한다 

이처럼 서구적인 분석적인 교리나 법의 잣대를 갖고 한국목사들의 영성에 메스를 가하면 주기철, 손양원, 김익두, 한경직, 이성봉, 이천석, 조용기, 김삼환, 김기동, 하용조, 김지철, 곽선희 목사 등 모두 이단이 되고만다. 김진홍목사도 이단이다. 김진홍목사는 성경을 안고 자살한 사람에 대해서 지옥에 갔다고 장담해서는 안될 것이다 라고 한 바 있다. 그렇다면 김진홍목사도 이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김진홍목사를 이단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안병무의 신학이 민중신학이었다면 그의 신학은 넝마주의 신학이었다. 김진홍에게서 서구의 신학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이처럼 한국적 영성과 심성을 토대로 부흥운동을 벌인 사람들에 대해서 분석적이고 형식적인 서구의 신학의 잣대를 들이되면 모두 이단이 될 수 있다. 이제 이단놀음은 그쳐야 한다. 이단은 마리아월경잉태론자들과 이들을 옹호하는 사람들 뿐이다. 

청계천 넝마주의를 목회하고, 서울승합차장들을 목회하고, 고무다리 질질 끌고 수천명씩 안수를 하고, 강원도 산골짜기라도 가서 부흥회 인도하고, 귀신들을 수천명씩 쫏고 병자를 수천명씩 고치는 사람들에 대해 서구의 어설픈 신학의 잣대를 갖고서 지나칠정도로 비개혁신학, 이단 운운하는 것은 한국인의 심성을 배제하는 것이다.

이단정죄는 죽은 자들의 서구신학의 산물.....이제는 살리는 한국적 신학 필요

칼빈, 벌콥, 메이첸, 바르트, 박형룡은 모두 죽었다. 이제는 죽은 자들의 신학이 아니라 한국정서와 한국문화에 맞는 산 신학이 필요할 때이다. 더 이상 죽은 자들의 죽은 신학갖고서 구원은 못할망정 산 자들까지 죽이는 신학에 편승하지 말고, 한국적 심성, 한국적 정서, 한국의 혼을 반영한 한국적 신학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더는 정죄하는 칼빈의 교리신학, 뻘콥과 박형룡의 근본주의 신학에 몰두하지 말고 살리는 한국적 신학을 만들어내야 한다. 차라리 칼빈, 루터, 벌콥보다 우리 민중의 삶을 반영하여 민중신학을 만든 한국인 안병무 교수가 오히려 존경스럽다. 

서구의 신학을 한국인의 시각으로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하여 재해석해 줄 한국인 신학자가 출현해야 한다. 기독교계는 더이상 어설픈 서구의 신학의 틀갖고서 이단감별사들이 판을 치지 못하도록 건전한 한국신학이 출현해야 한다. 이단감별사들은 모두 죽은 자들의 신학을 갖고서 교리적으로 교단적으로 목사들을 죽이고 정죄했다. 그들은 죽은자의 신학을 갖고 설쳤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신학은 죽은 자들의 서구신학이 아니라 서구신학을 재해석한 산 자의 신학으로서 모두 살리는 신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제 어설픈 서구사람들의 신학이나 해석학보다는 동양과 서양을 뛰어넘어 서구보다 더 위대하게 한국인의 독특한 눈과 정서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틀이 필요하다.  그러는 의미에서 조용기, 김삼환목사는 위대한 목회자들이고 안병무교수는 위대한 신학자이다. 적어도 그들은 한국의 정서를 반영한 목회자와 신학자였기 때문이다. 미국도서관에 가면 반드시 조용기목사와 안병무교수의 책은 영어로 나열되어 있다. 앞으로 한국적 정서와 신학, 사회적 상황을 대변하는 신학이 필요할 때이다. 죽은 자의 신학이 아니라 산 자의 신학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러는 의미에서 조용기, 김삼환, 안병무는 기독교계에 있어서 진정한 한류파의 시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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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2

  • 권의택2014-08-24 22:56:05

    조용기, 김삼환, 안병무는 한국적 정서를 목회와 신학으로 옮겨 한국목회와 신학을 세계화시킨 진정한 한류파 신학자들이다.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업적이 지금에 와서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지 기독교계를 쑥대밭으로 만든 책임도 물어야 합니다.

    얼마전 교황이 방한하여 13억의 칼톨릭신자와 세계인을 향하여서는 물론 특히 아시이지역의 전도의 목적을 위한 위한 발걸음이기도 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교황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셨지요?

    세계를 향한 전도의 목적을 위한 한 사람의 발걸음이 뭘 보여 주웠으며 남기고 갔나요?

    한국의 지금의 교계의 심각성은 말도 못해요. 전도가 안되고 있어요. 왜냐하면 대형교회의 지도자들의 부끄러운 모습이 전 교인들을 향한 세상사람들이 보는 동질감의 눈입니다.

    칼톨릭 교황의 가난하고 힘든 사람에게 인간적으로 닥아간 모습. 그보다 몇십배 몇백배의 선한 사마리아의 사랑을 베풀고 계시는 선한 목사님들 선교사님들 교우들이 이땅에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참으로 많아요.

    그런데 대형교회 지도자들의 수치스러운 행보로 다 가리워지고 전도의 문이 막혀버린 책임은 누가 져여 합니까?

    교계의 지도자들이여!
    이젠 기독교의 선한일을 세상에 알리는 노력좀 하세요.
    남이 모르게 하라가 아닙니다. 대형교회의 지도자들의 수치를 가리고 빨리 기독교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남이 모르게 하라가 아닙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선한 일의 행위를 세상에 홍보를 하여야 하는 시대입니다.

  • 대칸2014-05-20 14:20:15

    읽어보니 이런생각이드네요
    무슨짓을 해서든지 교회만 크면 한국신학이고 그것가지고 조금 윤리적인 행위를 하면
    한국신학이고 한국신학은 한류인가요? 그렇다면 한류신학은 없나요 아무데나 신학을 붙이면
    다 신학이죠 그런 것이 신학이라 한다면 신학교 갈 필요도 없을 것 같고 신학교가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단은 모두가 틀려서 이단이라고 하지는 않쟎아요 아무리 교회가 커도 잘 못된 것은 잘 못된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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