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바르트와몰트만을 중심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신학내용
이제 이 글은 위와 같은 신학의 패러다임 이동을 주장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신학내용으로서 1) 신학의 종말론적 오리엔테이션, 2) 복음, 삼위일체론, 하나님 나라, 그리고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 3)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학, 4) 내러티브 신학에 대해서 논할 것이다.
1) 20세기 신학의 종말론적인 오리엔테이숀
세계 제1차 대전을 계기로 칼 바르트로 비롯되는 변증법적인 신학자들은 18-19세기의 낙관론적인 역사내적 “천년왕국론”(?)을 거부함으로써, 모더니즘 시기의 종말론과 단절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종말론을 등장시킨다. 폰 발트하살은 트뢸취가 19세기에는 종말론 사무실의 문이 닫혀있었다고 말한 것에 대하여 바야흐로 트뢸취 이래로 종말론 사무실이 매우 붐빈다고 하였다.
바이쓰(Johannes Weiss)와 슈바이쳐(Albert Schweitzer)는 키에르케고르와 함께 바르트에서 비롯되는 신정통주의 신학의 종말론을 등장하게 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19세기 말에, 아직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바이쓰와 슈바이쳐가 예수님의 메시지와 실존 그리고 초대교회의 종말론을 재발견한 것은 개신교 신학사에 있어서 큰 사건이었다. 이것은 19세기의 학문적인 신학과 교회 그리고 신앙과 경건의 바탕을 뒤흔들어버린 지진과도 같았다. 묵시적 메시지를 가지고 등장하신 예수님께서는, 19세기의 예수전이 그리던 예수님, 교회의 전통적인 기독론, 그리고 복음을 문화 속에 용해시킨 문화개신교(Kulturprotestantismus)에 대해서 너무나도 낯선 분으로 다가오셨기 때문이다. 복음과 문화의 종합은 더 이상 예수님과 그의 메시지 앞에서 지탱될 수 없었다. 바이쓰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설교'(1892)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님의 견해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과 전적으로 무관한, 절대적으로 초세계적인 요인이다. ... 이 하나님 나라 개념에 대한 윤리적-종교적 사용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의 근원적 종말론적 및 묵시적 의미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겉보기에만 성서적이다. 그것은 예수님과 다른 의미로 그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2) 20세기 신학에 있어서 복음, 삼위일체 하나님, 하나님 나라, 하나님 선교
루터와 칼빈으로 대표되는 16세기 종교개혁은 ‘복음의 재발견’의 시기로, 17세기 개신교 신학, 미국의 구 프린스턴 신학, 그리고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은 정통주의 신학의 시기로, 18-19세기 개신교의 복음주의 각성운동은 성서문자주의적인 복음주의로 특징 지워진다면, 칼 바르트 이후 혹은 위에서 지적한 바 종말론이 신학의 모든 주제에 영향을 준 이래로, 복음이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파송의 선교 맥락에서 이해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칼 바르트의 화해론과 몰트만의 종말론에서 예증할 수 있다.
(1) 칼 바르트
바르트는 참 하나님이시오 참 인간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사장으로서, 왕으로서, 그리고 예언자로서 하나님과 이 세상(인류 공동체와 창조세계)을 화해케 하셨다고 한다. 이것이 다름 아닌 바르트 화해론(C.D. Ⅳ/1-3)이 말하는 화해의 복음(the Person and Reconciliation of Jesus Christ)의 세 계기이다.
첫째 계기는 하나님의 하강운동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성육신시키시어 이 땅 위로 파송하심으로 십자가에 이르기 까지 순종케 하셨다. 참 하나님으로서 심판 주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참 인간으로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그리고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발과 정죄와 처형을 당하셨다(the Judge as Judged).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노출시켰고, 동시에 인류를 의롭다고 선언하셨다(de iure). 이 예수 그리스도는 대 제사장으로서 동시에 화목제물이셨다. 이것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선교요, 하나님 나라 사역이다. 그리고 성령강림과 더불어 성령의 일깨우심으로(awakening) 부름 받은 사람들이 의롭다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신앙), 모이는 교회 공동체(de facto)가 되었으니, 말하자면 교회는 성령의 사역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선교에 동참한 것이다.
둘째 계기는 인간 예수님의 상향운동이다.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귀(부활: the Royal man)는 인류의 나태와 비참을 노출시키고, 인류를 성화시킨다(de iure). 이는 죄와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왕 직 수행에 관한 것으로서 역시 하나님의 선교요, 하나님 나라 사역이다. 그리고 성령의 살리시는 역사(quickening)로 믿고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들이 성화되어(사랑), 든든히 세움 받은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de facto).
말하자면 교회는 성령의 사역으로 예수님의 왕 직에 동참한다. 셋째 계기로 부활하시어 승귀 하신 인간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 연합하신 분(the God-man) 혹은 신인으로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서 인류역사와 교회를 통치하시면서, 인류의 거짓을 노출시키고, 인류와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재 연합을 약속하신다(de iure). 바로 이분은 예언자로서 하나님의 선교 혹은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성취하신 것이다. 그리고 믿음과 성화의 공동체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은 성령의 조명시키는 역사(enlightening)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가운데, 세상 속으로 파송 받은 교회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소망)(de facto).
하나님께서는 인간(교회)이 믿기 이전에 혹은 인간의 믿음과는 관계없이 그의 사랑의 주권으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향운동과 상향운동과 종말을 향한 수평운동을 통하여 자기 자신과 이 세상의 화해를 이미 성취하셨고, 그것의 종말론적인 완성을 남겨 두고 계신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일터는 이 세상과 창조세계이다. 그리고 교회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화해사역 혹은 그의 하나님 나라 운동 혹은 그의 세상을 위한 선교에 동참하고 있고, 동참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2) 몰트만
그는 복음을 통하여 계시되고 약속된 하나님 나라 혹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비전을 우선 설정하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것을 향하여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인류의 죄와 죽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속에서 종말론적 완성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선교를 펼치신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란 하나님 나라의 미리 맛봄과 징표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세상 선교를 위한 도구인 것이다. 그런 즉, 교회의 자리와 사명과 선교는 하나님 나라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상 선교 다음에 놓인다.
몰트만은 '희망의 신학'(1964)에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분의 부활 이 “하나님 나라”를 계시하고 약속한다고 한다. 이 하나님 나라는 “옛 창조세계로부터의 새 창조”, “죽은 자들의 부활”, 혹은 “새 하늘 새 땅”을 말한다. 그는 구약의 약속사가 지향하는 종말론적인 비전과 신약의 복음에 의해서 계시되고 약속된 종말론적인 비전이 하나님의 나라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합류할 것을 주장한다.
여기에서 “미래”란 현재의 연장으로서의 미래 세계가 아니라 “새 창조”(creatio nova)에 의한, 질적으로 새로운 미래(adventus vs. futurum)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오심에 의해서 결정되는 그런 미래이다.
몰트만에 의하면, 믿는 자들이 받은 성령은 종말론적 담보로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시키시고 우리의 죽을 몸을 부활시키실 그 성령과 동일하신 분이시다(롬8:11). 그리고 믿는 자들을 진리로 인도하는 말씀은 다름 아닌 영생(아직 우리는 영생 그 자체를 소유한 것이 아니지만)을 약속하는 말씀이다. 이 맥락에서 몰트만은 고린도전서 15장 3-5절 말씀에 근거하여, 그의 미래적 종말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세계는 죄와 죽음이 완전히 멸절될 새 창조의 세계, 죽은 자들의 부활의 세계, 하나님의 의가 지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세계이다.
몰트만은 교회의 본질과 목적을, 그 자체 내에서가 아니라 위에서 지적한 미래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 혹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몰트만은 신약성서를 따라 교회(the Church)를 종말론적 구원의 공동체로 정의하고, 교회는 이 종말론적 기대로 모이고, 이것을 위해서 이 세상 속으로 파송 받는다고 한다.
몰트만에 의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부르시고, 의롭다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이렇게 하심으로써 이들을 세상을 위한 그의 종말론적 미래 속으로 부르시고, 모으시며, 파송하신다. 그래서 몰트만에게 있어서 교회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주권으로부터 그리고 죽음을 정복하시고, 생명과 의와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시는 그리스도의 다가오는 주권을 위해서 산다.”
그리고 몰트만은 교회가 그것으로부터 살고, 그것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바, 말씀선포, 세례와 성만찬을 종말론적으로 재 정위(reorientation)시키고, 교회의 선교(mission)를 그리스도의 이 세상에 대한 선교(missio Christi)와 성령의 선교(missio Spiritus)에 근거시키고 있다. 몰트만에게 있어서 교회란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여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자신의 삶이 이 기대에 의해서 결정되는 그와 같은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그리고 이 교회는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의 본성”을 지녔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세상 섬김을 따라서 이 세상을 섬겨야 할 것을 주장한다.
따라서 몰트만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여 진 교회는 결코 이 세상으로부터 격리되고 분리된 게토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의 장인 이 세상 한 복판에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현해야 하는 것이다.
종말론이란 단순히 영혼구원, 이 사악한 세상으로부터 개인의 구원, 혹은 괴로운 양심에 대한 위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 인간의 인간화, 인류의 사회화, 그리고 모든 창조세계의 평화에 대한 종말론적인 희망의 실현을 의미한다. 공동체를 세우는 사랑 속에 있는 이와 같은 류의 ‘창조적 제자의 도’란 모든 것들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모든 것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바, 이는 하나님 나라의 미래와 인간의 미래에 대한 기독교적 희망의 전망을 통해서 종말론적으로 가능하다.
특히, 몰트만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 훗날 그의 삼위일체론의 출발점을 발견한다. 그리고 몰트만은 '삼위일체와 하나님 나라'(1980)에서 그의 삼위일체론을 본격적으로 제시한다. 그는 이 저서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 나라의 역사라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 삼위일체의 여러 패턴의 운동은 의심 없이 하나님의 통치인데, 성서 속에서 성서적 증언들을 통해서 흐르고 있는 빨간 줄은 하나님 나라의 역사이다.
이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삼위일체적 선교(혹은 역사)에 다름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삼위일체적 선교역사는 이제 종말론적으로 개방된 선교이다. 세례야말로 삼위일체 교리의 실천이다. 하나님 나라의 삼위일체적 역사가 남녀인간을 소유하는 것은 신앙과 세례를 통해서 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삼위일체에 대한 개념은 세례 받는 사람의 신앙고백과 그의 기도와 찬송에서 형성된다.
신적 삼위일체의 하나 되심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코이노니아에 있지, 그것의 숫자적 하나 되심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폐쇄된 하나 됨이 아니라 개방된 코이노니아이다. 요한복음 17장 21절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자들의 상호교제는 아들과 아버지의 교제의 유비(analogia)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삼위일체적 코이노니아에 유사할 뿐만 아니라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코이노니이아 안에 있다.
이것은 전(全) 창조세계가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에 들어 갈 수 있고, 이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식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개방되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코이노니아는 신학적인 언어일 뿐만 아니라, 그 중심에 있어서 그것은 구원론적이다.
이형기(Ph.D)교수는 서울대 종교학과, 장신대학원, 하버드 대학, 드류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현재는 장로회신학대학 명예교수이며 NCCK신앙과 직제위원회 위원장이기도하다. 예장통합교단의 21세기 신앙고백을 기초하기도 했다.
이제 이 글은 위와 같은 신학의 패러다임 이동을 주장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신학내용으로서 1) 신학의 종말론적 오리엔테이션, 2) 복음, 삼위일체론, 하나님 나라, 그리고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 3)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학, 4) 내러티브 신학에 대해서 논할 것이다.
1) 20세기 신학의 종말론적인 오리엔테이숀
세계 제1차 대전을 계기로 칼 바르트로 비롯되는 변증법적인 신학자들은 18-19세기의 낙관론적인 역사내적 “천년왕국론”(?)을 거부함으로써, 모더니즘 시기의 종말론과 단절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종말론을 등장시킨다. 폰 발트하살은 트뢸취가 19세기에는 종말론 사무실의 문이 닫혀있었다고 말한 것에 대하여 바야흐로 트뢸취 이래로 종말론 사무실이 매우 붐빈다고 하였다.
바이쓰(Johannes Weiss)와 슈바이쳐(Albert Schweitzer)는 키에르케고르와 함께 바르트에서 비롯되는 신정통주의 신학의 종말론을 등장하게 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19세기 말에, 아직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바이쓰와 슈바이쳐가 예수님의 메시지와 실존 그리고 초대교회의 종말론을 재발견한 것은 개신교 신학사에 있어서 큰 사건이었다. 이것은 19세기의 학문적인 신학과 교회 그리고 신앙과 경건의 바탕을 뒤흔들어버린 지진과도 같았다. 묵시적 메시지를 가지고 등장하신 예수님께서는, 19세기의 예수전이 그리던 예수님, 교회의 전통적인 기독론, 그리고 복음을 문화 속에 용해시킨 문화개신교(Kulturprotestantismus)에 대해서 너무나도 낯선 분으로 다가오셨기 때문이다. 복음과 문화의 종합은 더 이상 예수님과 그의 메시지 앞에서 지탱될 수 없었다. 바이쓰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설교'(1892)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님의 견해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과 전적으로 무관한, 절대적으로 초세계적인 요인이다. ... 이 하나님 나라 개념에 대한 윤리적-종교적 사용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의 근원적 종말론적 및 묵시적 의미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겉보기에만 성서적이다. 그것은 예수님과 다른 의미로 그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2) 20세기 신학에 있어서 복음, 삼위일체 하나님, 하나님 나라, 하나님 선교
루터와 칼빈으로 대표되는 16세기 종교개혁은 ‘복음의 재발견’의 시기로, 17세기 개신교 신학, 미국의 구 프린스턴 신학, 그리고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은 정통주의 신학의 시기로, 18-19세기 개신교의 복음주의 각성운동은 성서문자주의적인 복음주의로 특징 지워진다면, 칼 바르트 이후 혹은 위에서 지적한 바 종말론이 신학의 모든 주제에 영향을 준 이래로, 복음이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파송의 선교 맥락에서 이해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칼 바르트의 화해론과 몰트만의 종말론에서 예증할 수 있다.
(1) 칼 바르트
바르트는 참 하나님이시오 참 인간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사장으로서, 왕으로서, 그리고 예언자로서 하나님과 이 세상(인류 공동체와 창조세계)을 화해케 하셨다고 한다. 이것이 다름 아닌 바르트 화해론(C.D. Ⅳ/1-3)이 말하는 화해의 복음(the Person and Reconciliation of Jesus Christ)의 세 계기이다.
첫째 계기는 하나님의 하강운동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성육신시키시어 이 땅 위로 파송하심으로 십자가에 이르기 까지 순종케 하셨다. 참 하나님으로서 심판 주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참 인간으로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그리고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발과 정죄와 처형을 당하셨다(the Judge as Judged).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노출시켰고, 동시에 인류를 의롭다고 선언하셨다(de iure). 이 예수 그리스도는 대 제사장으로서 동시에 화목제물이셨다. 이것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선교요, 하나님 나라 사역이다. 그리고 성령강림과 더불어 성령의 일깨우심으로(awakening) 부름 받은 사람들이 의롭다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신앙), 모이는 교회 공동체(de facto)가 되었으니, 말하자면 교회는 성령의 사역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선교에 동참한 것이다.
둘째 계기는 인간 예수님의 상향운동이다.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귀(부활: the Royal man)는 인류의 나태와 비참을 노출시키고, 인류를 성화시킨다(de iure). 이는 죄와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왕 직 수행에 관한 것으로서 역시 하나님의 선교요, 하나님 나라 사역이다. 그리고 성령의 살리시는 역사(quickening)로 믿고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들이 성화되어(사랑), 든든히 세움 받은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de facto).
말하자면 교회는 성령의 사역으로 예수님의 왕 직에 동참한다. 셋째 계기로 부활하시어 승귀 하신 인간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 연합하신 분(the God-man) 혹은 신인으로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서 인류역사와 교회를 통치하시면서, 인류의 거짓을 노출시키고, 인류와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재 연합을 약속하신다(de iure). 바로 이분은 예언자로서 하나님의 선교 혹은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성취하신 것이다. 그리고 믿음과 성화의 공동체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은 성령의 조명시키는 역사(enlightening)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가운데, 세상 속으로 파송 받은 교회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소망)(de facto).
하나님께서는 인간(교회)이 믿기 이전에 혹은 인간의 믿음과는 관계없이 그의 사랑의 주권으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향운동과 상향운동과 종말을 향한 수평운동을 통하여 자기 자신과 이 세상의 화해를 이미 성취하셨고, 그것의 종말론적인 완성을 남겨 두고 계신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일터는 이 세상과 창조세계이다. 그리고 교회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화해사역 혹은 그의 하나님 나라 운동 혹은 그의 세상을 위한 선교에 동참하고 있고, 동참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2) 몰트만
그는 복음을 통하여 계시되고 약속된 하나님 나라 혹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비전을 우선 설정하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것을 향하여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인류의 죄와 죽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속에서 종말론적 완성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선교를 펼치신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란 하나님 나라의 미리 맛봄과 징표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세상 선교를 위한 도구인 것이다. 그런 즉, 교회의 자리와 사명과 선교는 하나님 나라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상 선교 다음에 놓인다.
몰트만은 '희망의 신학'(1964)에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분의 부활 이 “하나님 나라”를 계시하고 약속한다고 한다. 이 하나님 나라는 “옛 창조세계로부터의 새 창조”, “죽은 자들의 부활”, 혹은 “새 하늘 새 땅”을 말한다. 그는 구약의 약속사가 지향하는 종말론적인 비전과 신약의 복음에 의해서 계시되고 약속된 종말론적인 비전이 하나님의 나라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합류할 것을 주장한다.
여기에서 “미래”란 현재의 연장으로서의 미래 세계가 아니라 “새 창조”(creatio nova)에 의한, 질적으로 새로운 미래(adventus vs. futurum)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오심에 의해서 결정되는 그런 미래이다.
몰트만에 의하면, 믿는 자들이 받은 성령은 종말론적 담보로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시키시고 우리의 죽을 몸을 부활시키실 그 성령과 동일하신 분이시다(롬8:11). 그리고 믿는 자들을 진리로 인도하는 말씀은 다름 아닌 영생(아직 우리는 영생 그 자체를 소유한 것이 아니지만)을 약속하는 말씀이다. 이 맥락에서 몰트만은 고린도전서 15장 3-5절 말씀에 근거하여, 그의 미래적 종말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세계는 죄와 죽음이 완전히 멸절될 새 창조의 세계, 죽은 자들의 부활의 세계, 하나님의 의가 지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세계이다.
몰트만은 교회의 본질과 목적을, 그 자체 내에서가 아니라 위에서 지적한 미래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 혹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몰트만은 신약성서를 따라 교회(the Church)를 종말론적 구원의 공동체로 정의하고, 교회는 이 종말론적 기대로 모이고, 이것을 위해서 이 세상 속으로 파송 받는다고 한다.
몰트만에 의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부르시고, 의롭다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이렇게 하심으로써 이들을 세상을 위한 그의 종말론적 미래 속으로 부르시고, 모으시며, 파송하신다. 그래서 몰트만에게 있어서 교회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주권으로부터 그리고 죽음을 정복하시고, 생명과 의와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시는 그리스도의 다가오는 주권을 위해서 산다.”
그리고 몰트만은 교회가 그것으로부터 살고, 그것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바, 말씀선포, 세례와 성만찬을 종말론적으로 재 정위(reorientation)시키고, 교회의 선교(mission)를 그리스도의 이 세상에 대한 선교(missio Christi)와 성령의 선교(missio Spiritus)에 근거시키고 있다. 몰트만에게 있어서 교회란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여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자신의 삶이 이 기대에 의해서 결정되는 그와 같은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그리고 이 교회는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의 본성”을 지녔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세상 섬김을 따라서 이 세상을 섬겨야 할 것을 주장한다.
따라서 몰트만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여 진 교회는 결코 이 세상으로부터 격리되고 분리된 게토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의 장인 이 세상 한 복판에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현해야 하는 것이다.
종말론이란 단순히 영혼구원, 이 사악한 세상으로부터 개인의 구원, 혹은 괴로운 양심에 대한 위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 인간의 인간화, 인류의 사회화, 그리고 모든 창조세계의 평화에 대한 종말론적인 희망의 실현을 의미한다. 공동체를 세우는 사랑 속에 있는 이와 같은 류의 ‘창조적 제자의 도’란 모든 것들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모든 것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바, 이는 하나님 나라의 미래와 인간의 미래에 대한 기독교적 희망의 전망을 통해서 종말론적으로 가능하다.
특히, 몰트만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 훗날 그의 삼위일체론의 출발점을 발견한다. 그리고 몰트만은 '삼위일체와 하나님 나라'(1980)에서 그의 삼위일체론을 본격적으로 제시한다. 그는 이 저서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 나라의 역사라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 삼위일체의 여러 패턴의 운동은 의심 없이 하나님의 통치인데, 성서 속에서 성서적 증언들을 통해서 흐르고 있는 빨간 줄은 하나님 나라의 역사이다.
이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삼위일체적 선교(혹은 역사)에 다름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삼위일체적 선교역사는 이제 종말론적으로 개방된 선교이다. 세례야말로 삼위일체 교리의 실천이다. 하나님 나라의 삼위일체적 역사가 남녀인간을 소유하는 것은 신앙과 세례를 통해서 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삼위일체에 대한 개념은 세례 받는 사람의 신앙고백과 그의 기도와 찬송에서 형성된다.
신적 삼위일체의 하나 되심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코이노니아에 있지, 그것의 숫자적 하나 되심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폐쇄된 하나 됨이 아니라 개방된 코이노니아이다. 요한복음 17장 21절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자들의 상호교제는 아들과 아버지의 교제의 유비(analogia)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삼위일체적 코이노니아에 유사할 뿐만 아니라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코이노니이아 안에 있다.
이것은 전(全) 창조세계가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에 들어 갈 수 있고, 이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식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개방되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코이노니아는 신학적인 언어일 뿐만 아니라, 그 중심에 있어서 그것은 구원론적이다.
이형기(Ph.D)교수는 서울대 종교학과, 장신대학원, 하버드 대학, 드류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현재는 장로회신학대학 명예교수이며 NCCK신앙과 직제위원회 위원장이기도하다. 예장통합교단의 21세기 신앙고백을 기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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