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의 건강을 위해 노력했지만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않은 사람
뉴스엔조이 칼럼리스트이자, 번역가이며, 예장생활협동조합장인 김재일 목사가 어젯밤에 잠을 자다가 유배지를 벗어나 영원한 자유의 세계로 떠났다. 낮에 아들과 함께 점심식사때 육류를 들고 급체가 되었는데 자면 낫겠거니 하고, 그냥 잠을 청했는데 영원히 자버리고 만 것이다.
김목사는 최근에도 필자만 보면 "황목사, 연평도만 유배지인줄 알았는데, 육지에도 나와보니, 여기도 유배지이네. 결국 우리가 하나님나라 갈 때까지는 영원한 유배지에서 사는 것일세" 김목사는 자신이 유배지에 갇혀 사는 것을 알았고,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나라 뿐이라고 늘 되뇌곤 하였다.
필자만 보면 명성 원주 기도원에 가자고 해서, 이번주 금요일 토요일 명성수련원에 가려고 했는데, 그만 기도원도 가지 못하고 어제 유배지를 벗어나고 말았다. 하나님은 김목사가 더는 기도할 필요가 없기에 데려가고 말았던 것이다. 지용수 총회장을 비롯하여 많은 헌화가 들어왔다.
최근 출판사를 하려고 필자와 이동연 목사와 김재일 목사가 홍대입구역에서 만나고, 출판업을 제대로 해서, 한국 기독교를 아미슈교도처럼 청빈하게 살고,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 없이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서로 결의하고, 김목사는 자신이 잘 아는 출판사 사장, 마아케팅 담당을 필자에게 소개시켜주기도 했다. 지난 주도 분당에서 김목사와 함께 어느 여류 사장을 만나서 많은 노하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김목사는 "우리 서로 돈이 없으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맡기고 출판사를 잘 운영해 보자. 이익금이 남으면 보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다"라고 하며 자신이 미국에서 꾸준한 베스트 셀러가 된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라는 요셉의 이야기를 번역해서 필자에게 맡겨놓고, "6월 월드컵이 끝난 다음 출판하자" 라며 자신의 책이 나오기를 기대했었는데 번역만 남겨놓고 영원히 유배지를 떠나고 말았다.
김목사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미국에서 지난 20 여년동안 꾸준히 베스트 셀러로서 자리매김한 책이다. 요셉의 이야기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쓴 책이다.
김재일 목사는 이틀 전에도 필자에게 전화해서 에클레시안에 대해서 특정목사의 부패와 비리에 대해서 글을 쓰니 의도와 뜻은 알지만 속도를 조절하라고 몇마디 조언을 던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금,토 명성수련원에 가기로 약속까지 했는데 김목사는 야속하게도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놓고 유배지를 벗어나고 말았다.
2월달에는 교회를 떠나기로 했다고 해서 필자는 스웨덴에 한인교회가 있으니 그 곳을 소개해 줄테니 스웨덴까지 가기로 했지만, 2주동안 주일을 비울 수 없다며 그만 스웨덴도 가지를 못하였다.
김목사는 단순하고 멍청하게도 연평도교회에서 임지도 없이 떠나고 말았다. 필자는 김목사의 임지를 위하여 마침 역촌동에 있는 한 교회의 목사가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위치에서 교환목회를 추진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김재일목사와 필자와의 조우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재일 목사는 어느날 필자에게 갑자기 전화를 해서 성빛교회에 설교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실제로 필자에게 설교를 해달라고 한 목사는 김재일 목사뿐이다.
동기 목사들 한 명도 필자를 설교에 초청한 적이 없었다. 어느 날은 하남시에서 예장 생활협동조합장으로 있었을 때 필자의 집에까지 찾아와 유기농 수박과 멜론 참외를 한박스 가져오면서 교회법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도 하였다.
더욱 고마운 것은 재작년 초에 연평도 교회 부임되었다고 필자를 부흥강사로 초청했다. 필자를 부흥강사로 초청한 목사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너무나도 고맙고 기뻤다. 그러나 필자는 노조위원장과의 여러 소송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대신 농민목회의 대부 한경호 목사를 초청했다고 한다.
필자는 김목사를 잘 알지 못하지만, 김목사는 필자를 늘 염두해 두었다. 그래서 지난 여름에는 김목사에 대한 답례로서 아들을 데리고 연평도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찌기 갔지만, 그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배를 놓치고 말아 연평도를 갈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2월달에 아들녀셕을 데리고 김목사가 연평도를 떠나기 전에 한번 가기로 했다. 아들 녀석은 2시간 동안 계속된 너울성 파도때문에 토하고 난리가 났었다.
연평도에서 하루밤을 보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책에 대한 출판계약을 맺었다고 했다. 김목사는 기독교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았다. 서로 좋은 출판사를 만들어 한국기독교에 공헌하자고 나름대로 몸부림 쳤다. 필자는 김목사로인해 정조대왕이 만든 수원성도 가보았고, 서해해전 연평도에가서 북한의 섬도 보았다.
김목사는 기침을 많이 하는 천식이 있어서 잘 아는 도림동교회 약사에게 김재일 목사의 천식을 고칠때까지 도와달라고 하자. 그 권사님은 김목사의 천식을 고칠 때까지 무료로서 약을 제공하기로 하여, 김목사의 천식이 조금씩 수그러드는 기미였다. 나도 너무나도 기뻤다. 그러나 이제는 김목사의 기침소리도 듣지 못하게 되었다.
인명진목사, 나한테는 건강하라고 책도 갖다 주더니만 본인의 건강은 돌보지 않아
김목사는 최근에 화곡동교회의 한 장로님이 암으로 고생한다고 암환자를 위해서 에클레시안에 글을 써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남의 건강은 돌보면서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않았다. 인명진 목사는 헌화를 마치고, "나한테는 건강하라고 여러 권의 책도 갖다가 주더니 정작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않았다"며 안타까워 했다.
필자는 이번 주에 기도원에 가서 김목사가 하지 못한 기도도 대신하려고 한다. 오늘 헌화를 하면서 김목사가 다하지못했던 양심적인 기독교, 예수의 정신이 깃든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 서기로 했다. 그리고 김목사책을 출판해서 이익금이 남으면 김목사의 가족들을 돌볼 작정이다.
마지막 편지봉투가 조의금 봉투가 될 줄이야
오늘은 새벽부터 일어나 필자의 방을 청소했다. 3시간 동안 방을 정리하고, 거의 다 치웠는데 편지 봉투가 하나 남아 있었다. 어제 5년만에 만난 목사님 교회에 갔더니 이 목사님이 10만원을 주셔서 그 봉투를 버릴까 말까하다가, 마침 집에 편지봉투도 없고, 어떤 인쇄도 되어 있지 않아 한번 더 쓸 수 있는 봉투라고 생각을 하고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봉투가 김재일 목사의 마지막 부조금 봉투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만이 이 봉투의 쓰임새를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이 봉투가 눈물의 봉투가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김재일 목사의 어머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데 재일이만 없다"며 눈시울을 글썽거렸다. 서해안 천안함의 실종군인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가시기 전에 서해안 출신 김재일 목사의 죽음은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동료 이동연 목사도 하나님은 왜 그런 선하고 좋은 사람을 먼저 데려가는 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김재일 목사는 이제야 유배지를 벗어나 영원한 자유의 세계로 날아갔다. 김목사는 연평도 1년 6개월의 목회에서 하루도 새벽기도를 빠진 적이 없고, TV 한시간 본 적이 없고, 66권의 주석을 모두 읽었다고 한다. 66권주석을 거의 읽으니 성서는 하나님께는 무조건 복종을 가르치고 있다고 나름대로 요약을 하였다.
그 이후 그의 삶은 바뀌어 시간만 나면 순복음 금식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하고, 집에 오면 번역을 하곤 하였다. 그러한 생활을 하다가 김목사는 영원한 유배지를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필자는 김목사가 요구하는 대로 월요일 기도원을 떠난다고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후회도 막심하다.
야속한 사람, 김재일 목사
그랬다면 김목사는 음식을 많이 먹지않고 금식기도를 준비했을 테니 말이다. 필자는 김목사의 자녀의 앞날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김목사를 다시 만날 때까지 김목사가 하지 못한 몫을 더하기로 했다. 지금도 에클레시안을 걱정하는 김목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잠을 청할 수가 없다. 김목사는 기도원에 가기로 약속을 하고, 기도가 필요없는 곳으로 가버렸다. 또한 이번에 에클레시안 기자로 등록하여 일주일에 한편씩 글을 쓰기로 해놓고 한번 밖에 쓰지 않고 펜을 멈춰버렸다. 김목사는 기도원을 가겠다는 약석과 글을 매주 한편씩 쓰겠다는 약속을 모두 깨뜨리고 영원한 곳으로 가버린 야속한 사람이었다.
김재일 목사는 대학생 자녀가 둘이 있고, 말이 없는 사모님과 홀어머니가 계신다. 그는 운동권에서 활동해왔고, 서강대학교를 마치고 장신대학원에 들어온 이후, 목회를 멀리하고, 예장생활협동조합장으로 봉사하면서 유기농농산물 먹기 운동을 펼쳤고, 음식을 통해서 병을고치거나 건강해지는 비결 등 많은 번역서적을 출판했고, 특히 재세례파의 후예로서 현대의 문명을 거부하고 기독교공동체로서 청빈하게 살아가는 아미시 교도에 대한 여러 권의 번역서적을 출간했다.
최근에는 집베커의 "내가 틀렸었다"를 번역서적으로 출간했고, 2년 전 지인의 권유로 연평도에 들어가 목회를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목회를 통해서 안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나도 기뻐서 2년 동안 주석과 성경만 읽기도 하고, 한국기독교미래사회에 대한 꿈을 펼치고 있었다. 최근에는 여기저기 임지를 찾으며 기도하고 있었던 중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김목사는 이 땅을 유배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은 니느웨로 가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다시스로 가고 있었는데 연평도라는 고래가 자신을 삼켜서 새사람되어 니느웨로 갈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니느웨가 아니라 영원한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김목사는 뉴스엔조이에도 많은 주옥같은 글을 남겨 놓았다. 김목사는 가을 동화처럼 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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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사는 최근에도 필자만 보면 "황목사, 연평도만 유배지인줄 알았는데, 육지에도 나와보니, 여기도 유배지이네. 결국 우리가 하나님나라 갈 때까지는 영원한 유배지에서 사는 것일세" 김목사는 자신이 유배지에 갇혀 사는 것을 알았고,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나라 뿐이라고 늘 되뇌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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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만 보면 명성 원주 기도원에 가자고 해서, 이번주 금요일 토요일 명성수련원에 가려고 했는데, 그만 기도원도 가지 못하고 어제 유배지를 벗어나고 말았다. 하나님은 김목사가 더는 기도할 필요가 없기에 데려가고 말았던 것이다. 지용수 총회장을 비롯하여 많은 헌화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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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판사를 하려고 필자와 이동연 목사와 김재일 목사가 홍대입구역에서 만나고, 출판업을 제대로 해서, 한국 기독교를 아미슈교도처럼 청빈하게 살고,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 없이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서로 결의하고, 김목사는 자신이 잘 아는 출판사 사장, 마아케팅 담당을 필자에게 소개시켜주기도 했다. 지난 주도 분당에서 김목사와 함께 어느 여류 사장을 만나서 많은 노하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김목사는 "우리 서로 돈이 없으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맡기고 출판사를 잘 운영해 보자. 이익금이 남으면 보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다"라고 하며 자신이 미국에서 꾸준한 베스트 셀러가 된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라는 요셉의 이야기를 번역해서 필자에게 맡겨놓고, "6월 월드컵이 끝난 다음 출판하자" 라며 자신의 책이 나오기를 기대했었는데 번역만 남겨놓고 영원히 유배지를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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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사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미국에서 지난 20 여년동안 꾸준히 베스트 셀러로서 자리매김한 책이다. 요셉의 이야기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쓴 책이다.
김재일 목사는 이틀 전에도 필자에게 전화해서 에클레시안에 대해서 특정목사의 부패와 비리에 대해서 글을 쓰니 의도와 뜻은 알지만 속도를 조절하라고 몇마디 조언을 던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금,토 명성수련원에 가기로 약속까지 했는데 김목사는 야속하게도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놓고 유배지를 벗어나고 말았다.
2월달에는 교회를 떠나기로 했다고 해서 필자는 스웨덴에 한인교회가 있으니 그 곳을 소개해 줄테니 스웨덴까지 가기로 했지만, 2주동안 주일을 비울 수 없다며 그만 스웨덴도 가지를 못하였다.
김목사는 단순하고 멍청하게도 연평도교회에서 임지도 없이 떠나고 말았다. 필자는 김목사의 임지를 위하여 마침 역촌동에 있는 한 교회의 목사가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위치에서 교환목회를 추진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김재일목사와 필자와의 조우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재일 목사는 어느날 필자에게 갑자기 전화를 해서 성빛교회에 설교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실제로 필자에게 설교를 해달라고 한 목사는 김재일 목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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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목사들 한 명도 필자를 설교에 초청한 적이 없었다. 어느 날은 하남시에서 예장 생활협동조합장으로 있었을 때 필자의 집에까지 찾아와 유기농 수박과 멜론 참외를 한박스 가져오면서 교회법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도 하였다.
더욱 고마운 것은 재작년 초에 연평도 교회 부임되었다고 필자를 부흥강사로 초청했다. 필자를 부흥강사로 초청한 목사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너무나도 고맙고 기뻤다. 그러나 필자는 노조위원장과의 여러 소송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대신 농민목회의 대부 한경호 목사를 초청했다고 한다.
필자는 김목사를 잘 알지 못하지만, 김목사는 필자를 늘 염두해 두었다. 그래서 지난 여름에는 김목사에 대한 답례로서 아들을 데리고 연평도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찌기 갔지만, 그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배를 놓치고 말아 연평도를 갈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2월달에 아들녀셕을 데리고 김목사가 연평도를 떠나기 전에 한번 가기로 했다. 아들 녀석은 2시간 동안 계속된 너울성 파도때문에 토하고 난리가 났었다.
연평도에서 하루밤을 보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책에 대한 출판계약을 맺었다고 했다. 김목사는 기독교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았다. 서로 좋은 출판사를 만들어 한국기독교에 공헌하자고 나름대로 몸부림 쳤다. 필자는 김목사로인해 정조대왕이 만든 수원성도 가보았고, 서해해전 연평도에가서 북한의 섬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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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사는 기침을 많이 하는 천식이 있어서 잘 아는 도림동교회 약사에게 김재일 목사의 천식을 고칠때까지 도와달라고 하자. 그 권사님은 김목사의 천식을 고칠 때까지 무료로서 약을 제공하기로 하여, 김목사의 천식이 조금씩 수그러드는 기미였다. 나도 너무나도 기뻤다. 그러나 이제는 김목사의 기침소리도 듣지 못하게 되었다.
인명진목사, 나한테는 건강하라고 책도 갖다 주더니만 본인의 건강은 돌보지 않아
김목사는 최근에 화곡동교회의 한 장로님이 암으로 고생한다고 암환자를 위해서 에클레시안에 글을 써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남의 건강은 돌보면서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않았다. 인명진 목사는 헌화를 마치고, "나한테는 건강하라고 여러 권의 책도 갖다가 주더니 정작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않았다"며 안타까워 했다.
필자는 이번 주에 기도원에 가서 김목사가 하지 못한 기도도 대신하려고 한다. 오늘 헌화를 하면서 김목사가 다하지못했던 양심적인 기독교, 예수의 정신이 깃든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 서기로 했다. 그리고 김목사책을 출판해서 이익금이 남으면 김목사의 가족들을 돌볼 작정이다.
마지막 편지봉투가 조의금 봉투가 될 줄이야
오늘은 새벽부터 일어나 필자의 방을 청소했다. 3시간 동안 방을 정리하고, 거의 다 치웠는데 편지 봉투가 하나 남아 있었다. 어제 5년만에 만난 목사님 교회에 갔더니 이 목사님이 10만원을 주셔서 그 봉투를 버릴까 말까하다가, 마침 집에 편지봉투도 없고, 어떤 인쇄도 되어 있지 않아 한번 더 쓸 수 있는 봉투라고 생각을 하고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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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봉투가 김재일 목사의 마지막 부조금 봉투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만이 이 봉투의 쓰임새를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이 봉투가 눈물의 봉투가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김재일 목사의 어머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데 재일이만 없다"며 눈시울을 글썽거렸다. 서해안 천안함의 실종군인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가시기 전에 서해안 출신 김재일 목사의 죽음은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동료 이동연 목사도 하나님은 왜 그런 선하고 좋은 사람을 먼저 데려가는 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김재일 목사는 이제야 유배지를 벗어나 영원한 자유의 세계로 날아갔다. 김목사는 연평도 1년 6개월의 목회에서 하루도 새벽기도를 빠진 적이 없고, TV 한시간 본 적이 없고, 66권의 주석을 모두 읽었다고 한다. 66권주석을 거의 읽으니 성서는 하나님께는 무조건 복종을 가르치고 있다고 나름대로 요약을 하였다.
그 이후 그의 삶은 바뀌어 시간만 나면 순복음 금식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하고, 집에 오면 번역을 하곤 하였다. 그러한 생활을 하다가 김목사는 영원한 유배지를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필자는 김목사가 요구하는 대로 월요일 기도원을 떠난다고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후회도 막심하다.
야속한 사람, 김재일 목사
그랬다면 김목사는 음식을 많이 먹지않고 금식기도를 준비했을 테니 말이다. 필자는 김목사의 자녀의 앞날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김목사를 다시 만날 때까지 김목사가 하지 못한 몫을 더하기로 했다. 지금도 에클레시안을 걱정하는 김목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잠을 청할 수가 없다. 김목사는 기도원에 가기로 약속을 하고, 기도가 필요없는 곳으로 가버렸다. 또한 이번에 에클레시안 기자로 등록하여 일주일에 한편씩 글을 쓰기로 해놓고 한번 밖에 쓰지 않고 펜을 멈춰버렸다. 김목사는 기도원을 가겠다는 약석과 글을 매주 한편씩 쓰겠다는 약속을 모두 깨뜨리고 영원한 곳으로 가버린 야속한 사람이었다.
김재일 목사는 대학생 자녀가 둘이 있고, 말이 없는 사모님과 홀어머니가 계신다. 그는 운동권에서 활동해왔고, 서강대학교를 마치고 장신대학원에 들어온 이후, 목회를 멀리하고, 예장생활협동조합장으로 봉사하면서 유기농농산물 먹기 운동을 펼쳤고, 음식을 통해서 병을고치거나 건강해지는 비결 등 많은 번역서적을 출판했고, 특히 재세례파의 후예로서 현대의 문명을 거부하고 기독교공동체로서 청빈하게 살아가는 아미시 교도에 대한 여러 권의 번역서적을 출간했다.
최근에는 집베커의 "내가 틀렸었다"를 번역서적으로 출간했고, 2년 전 지인의 권유로 연평도에 들어가 목회를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목회를 통해서 안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나도 기뻐서 2년 동안 주석과 성경만 읽기도 하고, 한국기독교미래사회에 대한 꿈을 펼치고 있었다. 최근에는 여기저기 임지를 찾으며 기도하고 있었던 중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김목사는 이 땅을 유배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은 니느웨로 가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다시스로 가고 있었는데 연평도라는 고래가 자신을 삼켜서 새사람되어 니느웨로 갈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니느웨가 아니라 영원한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김목사는 뉴스엔조이에도 많은 주옥같은 글을 남겨 놓았다. 김목사는 가을 동화처럼 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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